[심포지움 후기2] ‘페미워커파이터’ 대학생들이 ‘성평등 노동’운동의 역사를 찾다

* 이 후기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주최한 2018 페미노동캠프로 인연을 맺은 박혜리 님께서 써주셨습니다. 

 


 

9월 4일 화요일, 한국 여성 노동자회에서 30+1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열었다. 여성 노동운동사를 주제로 청년 민주주의 현장탐방 공모전을 진행중인 ‘페미워커파이터’팀원들도 함께 다녀왔다.

 

심포지엄은 상임대표 임윤옥(이메) 선생님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여는 말로 시작되었다. 최근 보수정권의 10년은 여성노동자회에게도 가혹한 시간이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나가며 여성노동자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여성노동자회는 그 10년간 두가지 질문을 던져왔다. 처음으로는 노동자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가져야하는,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에서 각각 떠맡아야 하는 이중부담의 악순환을 어떻게 깰 수 있을것인가. 두번째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있는 양극화, 저출생, 불안정성 그 모든 문제들의 핵심에는 ‘성평등 노동이 실현되지 못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성평등 노동은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르지 못하는가. 그 고민의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여성노동자회의 지난 10년이었다.

 

심포지엄은 이후 4가지 주제의 발제문과 4가지 주제의 토론문으로 이어졌다. 처음으로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신경아 선생님께서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신자유주의 시대 불안정한 여성노동문제를 짚어주었다. 젠더거버넌스가 해체된 사회에서 여성들을 둘러싼 삶의 조건은 사회경제적인 맥락속에서 규정된다. 신경아 선생님의 발제문에서는 현대의 사회경제적 맥락을 노동의 ‘불안정성’에서 찾는다. 여성의 노동은 항상 주변적인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노동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주로 시간제 일자리에 근무하게 되었고, 이것이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사회에 불안정한 노동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더욱이 지난 이명박-박근혜의 기업중심/경제중심 노동개혁은 이 속도를 더욱 심화시켰다. 여성의 문제는 결국 사회의 문제로 확산될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더더욱 성평등 노동을 지금 당장, 우리의 손으로 얻어내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한다. 앞서 여는 글에서도 언급된 것 처럼 저출생, 고용불안, 양극화 등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는 성평등이 올바르게 실현되어야 함께 해결될 수 있을것이다.

 

두번째 순서로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 배진경(솔키) 선생님이 여성노동자회의 지난 1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발제문이 있었다. 굵직한 운동들만 언급을 하며 넘어가겠다고 하셨음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여성노동자회의 활동은 항상 낮은 곳에 있는 약자의 ‘비명’에 응답하는 선택이었다. (발제문 22쪽) 이를 위해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현장의 요구를 법안과 구조에 담아내기 위하여 꾸준하게 달려왔다. 여성노동자회는 비정규직의 출구를 찾기 위하여, 직장 내 성희롱 근절을 위하여, 일과 생활의 균형을 모두에게 확신시키기 위하여, 국가와 사회가 갖는 돌봄노동 인식 개선을 위하여,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하여 수없이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돌봄협동조합협의회의 협회장이신 윤혜연 선생님의 ‘돌봄노동자’를 주제로 한 발제가 있었다. 2004년 그간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던 가사노동자들이 모여 가정관리사협회를 조직하였다. 가사노동자 운동의 시작은 파출부, 아줌마로 불리우던 가사노동자가 ‘가정관리사’의 이름을 갖는것부터 시작되었다. 이름이 확산되며 인식의 변화, 태도의 변화 또한 조금씩 뒤따라왔다. 그러나 여전히 가사노동자의 업무환경은 열악했다.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때문에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였고 업무 경계도 추상적이었다. 전가협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표준계약서와 업무 메뉴얼을 공개하고 가정관리사 민간자격을 등록하였다. 또한 가사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기 위하여 15년부터 준비해왔으나 아직까지도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또한 엄연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노동형태임을 인지하고 그들의 노동처우 개선을 위하여 관심을 가져야함에도 불구하고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 순서로는 전국여성노동조합의 나지현 선생님께서 (기존 노조에서 외면한) 여성노동자 조직화를 다뤄주셨다. 90년대 후반 한국 노동운동계는 급격한 여성노동자의 조직률 저하에 직면하였다. 기존 노동조합에서의 가부장성과 남성중심성이 그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발제문 103쪽) 기존 노조는 여성문제를 부차적인 것으로 다루거나(1999년 농협 사내부부 우선해고) 여성 노동자의 해고를 교섭 조건으로 받아들이는등(1998년 현대자동차 식당노동자 집단 정리해고) 여성노동자를 위하는 조직으로 보기 힘들었다. 이에 1999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전국여성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등장하며 다양한 여성 불안정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고,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각 학교마다 한명씩 있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학교 전체와 협상에 성공한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회사의 노조는 같이 일한다는 점에서 연대감이 쉽게 생길듯한데 학교비정규직은 그렇지 못하니 ‘혼자 한다’는 기분을 많이 느꼈을듯하다. 그러나 그 개개인을 모으고 뭉칠 수 있는 환경이 생기자 협상에서 함께 승리할 수 있었다.

 

이후 잠시 쉬는시간을 갖고 토론순서가 진행되었다. 시간이 많이 초과되어서인지, 토론시간이 짧아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이 되지는 못하였다. 총 네분께서 토론문으로 이야기를 열어주셨는데, 김현미 선생님, 김영순 선생님, 봉혜영 선생님께서는 함께 자리해주셨고 장지연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생긴 일로 함께하지는 못하였다. 네개의 토론문 모두 깊은 생각거리를 만들어주는 글이었다.
‘이미지 정치’는 성차별은 사라졌다는 인식의 오류를 만들어내고 있고, 차별적 범주였던 ‘여성’이란 생물학적 범주는 이제 동질적 범주가 아닌, 계급과 지위에 따른 분열, 분화, 재의미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일을 통해 자존감과 경제력을 쌓기 보다는 모멸감, 분노, 불안의 감정을 갖게 되면서 ‘혼자 겪어내기’의 외로운 감정 상태로 빠지게 된다. … 향후 노동자 운동의 핵심은 임금 및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문화적 폭력이 어떻게 경제적 착취와 연동되어 있고, 일터 내, 일터간 다양한 갑질이 몇몇의 일탈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으로 승인된 노동 통제 시스템인가를 밝혀내는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중 김현미 선생님의 토론문이 가장 내 고민과 맞닿아있어서 더 열심히 읽게 되었다. 나는 다른 소수자들을 향하는 차별과 다르게 여성에게 향하는 (나에게 향하는) 차별은 구조적인 문제로 보지 못하고 개개인의 문제로서 많이 받아들였었다. 여성은 더이상 차별받지 않는다는 그 이미지가 만들어낸 인식의 오류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구조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내재화하기 쉽고, 사회가 여성을 혐오하기때문에 본인또한 자신의 여성성ㅡ더 나아가서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기 쉽다고 느꼈다.

31년의 시간을 몇시간에 모두 담아내는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적어도 여성노동자회가 지금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느 방향으로 가려는지는 조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끔 노동자 운동, 사회 혁명속에서도 여성이 배재되어온 역사들을 접하다보면 정말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그럴 때 다시 방향감각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침반으로써, 여성들의 역사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을것이라 믿는다. 누군가 남자을 인간의 기본형으로 설정하고 그들만을 위해 싸웠을 때, 여성인 나를 위해서 역사를 써내려간 또 다른 나의 편도 있었다고. 그렇게 방향을 찾고 나면 만날 일 없는 먼 훗날의 어떤 소녀를 위해, 자신들의 전 생애를 다해 함께 싸운 그녀들의 역사가 끊기지 않도록 다시 달리고 싶어진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심포지엄에서 나는 그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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