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평화의 일꾼, 故백남기 농민을 추모합니다

“쌀값인상 17만원을 21만원대로.” 지난 대선에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백남기 농민은 대통령이 약속을 지키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폭력으로 대답했습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백남기 농민을 겨냥한 물대포가 땅을 무자비하게 때린 그 날. 물대포에 맞은 백남기 농민은 그대로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지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317일 동안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힘겹게 버티신 백남기 농민. 결국 9월 25일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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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일. 경찰은 백남기 농민에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진 이도 없습니다. 백남기 농민께서 위독하시던 24일 밤. 경찰은 병원에 병력을 보냈습니다. 백남기 농민께서 숨을 거두시자,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시민들과 대치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백남기 농민을, 그의 삶과 죽음을 언제까지고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찰의 만행을, 책임져야 할 이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유가족이 원치 않는 부검을 강행하려 하고, 대체 무엇이 그리 두려운지 병원 근처를 포위한 경찰. 그러나 하늘과 땅이 알고 우리가 압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故백남기님이 걸어온 길>

1947年 8월 24일(음력)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年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年 광주고등학교 졸업(17회)
1968年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이후 법대 학생회장 역임
1971年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年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1975年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年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1975~1980年 수도사 생활
1980年 중앙대학교 복교,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年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화) 장례식 주도
1980年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흑석동 캠퍼스~서울역 행진)
1980年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年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年 8월 20일 수도군단보통군법회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年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고향 보성으로 귀향
1981年 11월 – 박순례(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年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年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年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1991年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1993年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4年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 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年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보성군 농민회 감사
2015年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쓰러진 후 의식불명
2016年 9월 25일, 317일간 사투를 벌였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운명

유족 : 부인 박순례(율리아나), 딸 백도라지, 아들 백두산, 딸 백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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