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여성노동자 리더십 교육] 나? 여성노동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 1일차

 지난달 26일. 한국여성노동자회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8월 29일부터 2박 3일 간 이루어진 여성노동자 리더십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뚱뚱한 가방을 메고 파란 아침 바람을 맞으며, 생각했습니다. 여성. 노동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이제 이 사회에서 내가 누구이고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에, 저는 늘 이 단어들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무척 들뜨면서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불과 몇 달 전, 이 나라의 수도에서 벌어진 여성 살해 사건 이후. 무려 2016년에 여성들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 ‘여자를 죽이지 말아라’라고 외쳤습니다. 노동자의 삶은 위기와 불안의 연속입니다. 점점 더 불안해지는 고용과 팍팍해져가는 삶. 바닥없는 늪 같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 여성노동자의 현실과 위치는 어떨까요?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 보수정부의 반(反)노동적 조치들. 두 가지 부담을 지고 살아간다는 말만으로 여성노동자의 삶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까요?

2박 3일 간의 교육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더 소중하고 깊은 질문들을 가져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고요.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함께 나누기 위해. 날짜별 강의 내용을 거칠게나마 정리해보았습니다. 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주신 선배 활동가들과 강연을 해주신 선생님들(정희진, 손희정, 김현미, 은수미, 이주희)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가능하면 오래오래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강의1] 에피소드인가 서사인가 – 여성철학과 여성주의 / 강사 : 정희진(여성학자)

%ea%b0%95%ec%9d%98_%ec%a0%95%ed%9d%ac%ec%a7%84

 ‘남성의 역사는 연속성을 가지는 스토리이나, 여성의 역사는 연속성을 갖지 못한 각각의 에피소드로 존재한다.’ 정희진은 남성 중심으로 쓰인 기존의 역사에서 여성의 역사는 부산물처럼 여겨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여성의 역사를 서사화·역사화하자고 주장했다.

사회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경험과 서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재해석·재구성하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구태의 노동운동이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여성노동자의 경험과 서사를 중심으로 한국 여성노동운동사를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강의2] 여성혐오 시대에 생각하고 말하고 설치기 / 손희정(페미니스트 문화평론가)

%ea%b0%95%ec%9d%98_%ec%86%90%ed%9d%ac%ec%a0%95

 손희정은 ‘5.17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 살해) 이후 자신이 우연히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 피해자의 탓이 아니며, 페미사이드가 사회와 세상의 문제이며, (여남이)평등해야 비로소 안전하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적극적으로 발언한다고 보았다.

여성혐오(misogyny)는 ‘성 체계의 앙시앵레짐(ancien régime, 구체제舊體制)을 유지하는 정치적·문화적 구조’이자 ‘가부장제의 이미지 정치’이다. 손희정은 이를 다음의 세 가지 차원으로 분석했다.

첫째. 여성혐오는 이미지를 통해 매개되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와 권력의 문제이다. 일본의 대학 교수 우에노 치즈코는 그녀의 저작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에서, 여성혐오가 “남성에게 있어서는 여성 멸시,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기 혐오”로 경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로 구분하는 사회에서 수치심을 내면화한 여성은 ‘저항할 수 없다.’

둘째. 여성혐오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 불안과 공포를 반영한다. 문제는 이 불안과 공포가 남성의 입장과 시각을 기준으로 구성된, 말하자면 ‘남성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경제적 상황이 불안해질수록 남성은 전통적인 가부장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 대중문화는 사회의 위기를 남성의 좌절로 읽고, 남성(아버지)을 달래기 위해 ‘아빠 힘내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프로그램을 편성한다.

그러나 대중문화 속 여성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남성(파트너)의 사정에 맞춰진다. 1990년대에 흥행한 한국영화에 등장한 여성들은 노동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만, 그녀들의 일자리는 대체로 남성보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처우가 좋지 않다. 또 그녀들은 공적 영역의 노동과 사적 영역의 재생산노동을 둘 다 완벽하게 해내기를 요구받고, ‘여성으로서 타고난 모성의 요청’에 응답하며 영화의 서사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일하는 여성이 영화에 등장한 것은 여성운동의 성과로도 볼 수 있으나, 동시에 여성이 공적 영역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남성보다 처우가 좋지 않은 일자리에서 노동하고 가정에서의 재생산노동도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남성화된 사회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결혼 이야기, 1992)(미스터 맘마, 1992)(고스트 맘마, 1996)

2000년대에 흥행한 한국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 간의 연대를 공고히 하거나 반대로 뒤흔들 수 있는 일종의 ‘교환 가능한 (성적)소유물’로 그려지며(친구, 2001), 역사적 사실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쓰인다(웰컴 투 동막골, 2005).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여성은 사회가 물리쳐야 할 기괴하고 광적이고 두려운 존재로 그려진다(스릴러, 호러 영화).

셋째. 여성혐오는 여성운동이 거둔 성과에 대한 반발(backlash)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전에 비해 상승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발언권을 억누르고, 과거로 회귀하려는 것이다.

손희정의 강의 내용 중 무척 흥미로웠던 것은 영화 쉬리(1998)의 주인공 이방희(배우 김윤진)에 대한 분석이었다. 나는 강연을 듣기 전엔 이방희를 ‘한국 영화에 첫 등장한, 운명을 거스르고 자기 선택을 한 강인한 여성’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손희정은 이방희를 ‘한반도의 분단과 이에 따른 역사적 비극성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재현된 여성’으로 보았다.

세계대전 전후로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 투입되었다가,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남성들이 다시 일자리를 꿰차도록 약속한 국가에 의해 가정으로 도로 쫓겨나고, 이 과정에서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했는가에 대한 분석도 매우 흥미로웠다. 경제 불안, 전쟁과 같은 사회상황이 남성화되어 대중문화와 조응하여 대중문화 속 여성의 이미지가 좌우되는 것은 한국만의 사례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 [2016 여성노동자 리더십 교육] 나? 여성노동자,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ㆍ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정기탁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