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당당’은 착시현상, 실상은 ‘남성 노동자의 몰락’ –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①] 한국 노동시장 구조 변동과 젠더불평등의 변화

* 이 기사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하고 한국여성재단이 후원하는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 – 월급봉투가 묻는다, 젠더 불평등과 사회정의] 각 강의의 내용을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총 4부로 구성됩니다. 첫 강의는 김영미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맡았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img_6338

‘경비아저씨에겐 15만 원, 청소아줌마에겐 3만 원.’ 공지문 한 장이 A아파트 엘리베이터 벽에 떡하니 붙어있었다. 추석 격려금 얘기였다. 아파트 동 대표 회의에서 결정된 금액, 15만 원과 3만 원. 공지문을 본 순간을 회상하며 김영미 교수는 말했다.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그녀는 궁금했다. 공지문의 내용과 같은 ‘대놓고 임금차별’은 일반 기업, 이를테면 삼성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렇다면 삼성과 A아파트의 차이는 뭘까? 의문은 질문으로 구체화되었다. 한국 노동시장의 중심부와 주변부에서 젠더불평등은 어떻게 나타날까? 노동시장의 각각의 위치에서 여성들은 어떤 식으로 차별을 경험할까?

 

신자유주의론과 계급론, 노동시장 변화 설명하기에 불충분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급격히 증가했다.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현상은 ‘개인의 성과 차이’이므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계급론자의 시각은 다르다. ‘전형적인 계급 대 계급의 문제가 전면화 되는 과정’으로 현상을 파악한다.

기존에 한국 노동시장은 일본식 고용관계를 이식하여 대기업(재벌) 대 하청기업 관계가 보편화되고 내부노동시장이 발달하는 등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유연화로 자유시장경제(Liberal Market Economy)적 요소가 확산되었고, 조정시장경제의 특징과 자유시장경제의 특징이 한국 노동시장에 뒤섞였다. 김영미 교수는 이것을 ‘생산 체제의 혼종성’이라 설명하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노동시장의 ‘분절성’이라 말한다. 분절성이란 ‘격차가 크고 이동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계급과 직업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도 직장이 대기업인가 중소기업인가, 고용형태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에 따른 차이가 상당하다. 표면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한국노동시장의 분절성과 경계는 오히려 강해졌다. 불평등의 증가가 ‘개인의 성과 차이’라고 보는 신자유주의 옹호론은 이 현상에 들어맞지 않는다.

이번엔 반대편 입장을 보자. 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단단한 것은 녹아서 공기 중에 사라질 것이다.” 여기서 ‘단단한 것’이란, 사람을 규범 안에 가둬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해놓았던 봉건적 범주들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시장과 자본주의의 확대가 이 봉건적 범주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 예견했다. 그러나 한국은 예나 지금이나 OECD회원국 중 최악의 남녀 임금격차를 보인다. 고위직에서의 여성 비율이 턱없이 낮은 것도 여전하다. 한국 노동시장의 ‘단단한 것’은 녹아 사라지지 않았다.

 

여성의 성취? 남성의 몰락우리는 구조적 변화의 희생양

경제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는 임금불평등의 증가, 저임금 노동시장의 확대, 높은 젠더불평등의 유지로 간추릴 수 있다. 각각 떼어놓고 보면 이 현상들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세 가지 현상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은 한국 노동시장의 특징이다.

이 특징은 기술결정론의 시각에서 보면, IT혁명과 컴퓨터 혁명 등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고학력자와 고숙련자의 수요가 높아졌으나 이들의 수가 적어서 임금이 뛰어오른 결과이다. 하지만 김영미교수는 우리나라에서 IT, 고숙련 분야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있지 않으므로 기술결정론적 설명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확산론의 시각에는 신자유주의 확산으로 인해 노동계급이 몰락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설명으로는 젠더불평등의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 한편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성과만 잘 낸다면’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 않을 것이니, 불평등의 증가는 성별과 무관한 현상이라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김영미 교수는 1982년부터 2004년까지 남녀 임금격차와 이에 관한 자료들을 분석하며 답을 얻었다. 이 기간 동안 남녀 임금격차는 전체적으로 줄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성취를 이뤄낸 결과가 아니었다. 김영미 교수는 동 시기 ‘연도별 남성 임금 10분위 대비 여성의 상대적 분포’를 측정, 분석했다.

%ea%b9%80%ec%98%81%eb%af%b8%ea%b5%90%ec%88%98%ea%b7%b8%eb%9e%98%ed%94%84

(▲김영미, 2016.09.29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 1강 강의 자료)

1983년 여성 근로자의 60%는 남성 근로자 하위 10%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았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35%까지 줄었다. 반면 남성 상위 10%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 여성은 전체 여성 근로자의 1~2%로 변동이 거의 없다. 직업별로 분석해보면, 남녀임금격차는 전체적으로 줄었고 단순노무직에서 특히 많이 줄었다. 그런데 전문직 안에서 남성 하위 10%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는 여성의 비중은 늘었다. 이 안에서의 남녀 임금격차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남녀 임금격차가 줄어든 이유는 여성의 성취가 아닌 일부 남성 노동자의 몰락이라는 것이다. ‘여풍당당’, ‘전문직 여성들의 대거 사회 진출’과 같은 말들은 그저 착시현상을 사실로 여긴 것에 불과하다. 김영미 교수는 말한다.

“노동계급 남성들,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할 얘기들이 많습니다. ‘(당신들도)우리를 이런 곤란한 처지에 몰아넣고 있는 구조적 변화의 똑같은 희생양이다’라는 얘기를 좀 허심탄회하게 해야 됩니다.”

 

어디의 여성인가는 그녀의 대응 방식을 결정한다

1차 노동시장은 대기업의 정규직이다. 전체 노동자의 10%가 1차 노동시장에 있고, 이 중 여성은 24%에 불과하다. 2차 노동시장은 중소기업의 비정규직으로,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위치한 이들이다. 이들은 노동시장 전체 노동인구의 36%를 차지하고, 이 중 대부분은 여성이다. 그리고 1, 2차 노동시장 사이에 중간 노동시장이 있다. 중소기업의 정규직과 대기업의 비정규직으로 구성되는 중간 노동시장은 전체의 54%이고, 이 중 여성은 45%정도 비중을 차지한다.

1차 노동시장에서 여성은 남성 임금의 약65%를 받는다. 남녀 임금격차는 2차 노동시장에서는 비교적 적다. 여성은 남성 임금의 약80%를 받는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와 근속이 많고 교육수준과 노조 가입률이 높은 등, ‘설명 가능한’ 부분과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구분해서 살펴보았다. 1차 노동시장에서 설명 가능한 부분은 54%,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45%였다. 다시 말하자면, 남녀의 어떠한 구성적 차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직접적인 임금차별이 45%라는 것이다. 1차 노동시장과는 달리, 2차 노동시장에서는 남녀 간의 연령, 근속, 결혼여부 등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2차 노동시장에서 남녀 임금격차의 70%가 남녀의 구성적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다.

img_6324albanozo

이 차이의 이유는 1차, 2차 노동시장의 평가시스템을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다. 1차 노동시장의 평가 시스템은 공식적이고 능력주의적이며 관료화되어 있다. ‘내가 왜 저 사람에겐 A를, 저 사람에겐 B를 줬는가’를 모두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저 사람이 여자니까’ 라는 차별을 드러내놓고 했을 때에 사회로부터 받는 규범적인 압력이 상당하다. 그러나 2차 노동시장은 얘기가 다르다. 평가시스템은 비공식적이고, 자의적이고, 결정을 세세하게 설명해야 할 책무성이 없고, 사회로부터 받는 규범적인 압력이 적다.

그렇다면 1차, 2차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겪는 젠더차별의 양상은 어떻게 다를까? 1차 노동시장에서는 일단 여성을 잘 안 들인다. 들인다 하더라도 승진을 빨리 할 수 있는 곳에 여성을 배치하지 않으려 하는 등, 여성에게 배치상의 불이익을 준다. 그렇기에 이 임금차별은 설명이 가능하다. 기업은 여성에게 배치상의 불이익을 줘 놓고, 그녀의 ‘프로젝트 기여도가 낮아서’ 임금이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노동시장의 여성은 능력주의적 방식으로 젠더차별에 대응하려 한다. 자신을 ‘여자’, ‘엄마’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이 요구를 드러내면 승진과 배치에서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이 회사 직원이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남자처럼’, ‘남자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2차 노동시장은 직접적인 임금차별이 굉장히 클 가능성이 높다. 임금격차 자체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건 이 노동시장이 워낙 저임금 노동시장이기에 격차가 나 봤자 규모가 크기 어려운 것일 뿐이다. 이곳엔 승진의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성별화된 이데올로기가 만연해있다. 능력에 따른 평가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경비아저씨에겐 15만 원, 청소아줌마에겐 3만 원’이 가능하다. 이 노동시장의 여성은 젠더차별에 이렇게 대응한다. ‘나는 여자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라.’

분절성이 강한 한국 노동시장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여성의 젠더 불평등의 경험과 이에 대한 대응 방식이 다르다. 공정함에 대한 인식, 남성에 대한 평가, 정직요구의 우선순위 등도 다를 가능성이 있다. 한국 노동시장의 구조 변동 내지는 변화가 ‘여성 일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여성 노동자 간의 분절을 극복하고 연대를 이뤄낼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