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기본소득…상상력과 진단의 만남 –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③] 젠더관점에서 본 기본소득

※이 기사는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주최하고 한국여성재단이 후원하는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 – 월급봉투가 묻는다, 젠더 불평등과 사회정의] 각 강의의 내용을 전달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총 4부로 구성됩니다. 세 번째 강의는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이 맡았고, 토론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맡았습니다.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기. 출마를 선언한 어느 정치인은 말했다.

“저녁이 있는 삶.”

이 슬로건에 수많은 노동자가 환호했다. OECD 회원국 중 1인 당 노동시간이 길기로 늘 최상위권인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은 얼마나 달콤하고 절실한 꿈인가. 슬로건이 나온 지 4년이 지났지만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노동에 파묻혀 산다.

그러나 만약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는 시간을 단축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과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활동의 비중을 늘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3강 강의를 맡은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은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이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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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맡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좌), 강의를 맡은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우)

기본소득, 언제까지고 ‘꿈’일 것 같나요?

기본소득(basic income)은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지급 대상은 가구가 아닌 개인. 소득을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소득에 따르는 의무도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준다.

 지난 포럼 2강에서 우리는 세계 각국이 임금불평등에 대처하는 방식을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은 노동자의 최저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된다. ‘어떻게 노동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할 것인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자본의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안’이다.

김은희 위원장은 기본소득을 두 단계로 시행하는 안을 제시했다. 1단계로는 우선 당장 수요가 절실한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시행한다. 2단계는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전면 시행하는 것이다. 1단계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약 105조 원, 2단계 기본소득을 시행하려면 약 24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낭비되는 예산을 근절하고 기초연금 등 기본소득과 유사한 예산을 통합함으로써 재원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산 확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보편적 증세’다.

2014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4.6%. OECD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같은 해 OECD회원국의 평균 조세부담률은 34.1%. 한국의 조세부담률을 이 수준으로 올리면 1인당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2013년 덴마크의 조세부담률인 48.1%로 한국의 조세부담률을 올리면 1인당 월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

김은희 위원장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택도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어느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확산되었고, 성남시 청년배당과 서울시 청년수당과 같이 기본소득과 ‘유사한’ 정책이 시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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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2016.10.13 젠더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포럼 3강 강의 자료

기본소득은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것인가?

기본소득이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기본소득의 지급이 여성을 가정에 안주하게 하고, 이로 인해 성별분업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김은희 위원장은 기본소득이 가구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성은 가구의 일원이나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존재’가 아닌, 시민 개인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다. 캐롤 페이트만(Carole Pateman)은 ‘여성이 시민으로서 기본소득을 받음으로써 시민으로 인정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 기본소득으로 인해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여가와 재생산노동 등이 사람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수 있다. 김은희 위원장은 지금의 장시간 근로는 ‘가정에서 재생산노동을 담당할 여성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재생산노동에 쓰일 시간이 늘어난다면, 재생산노동은 성평등하게 이루어지고 여성이 직장과 가정에서 받는 이중부담은 완화될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

포럼 3강 토론자로 참여한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은희 위원장과는 견해가 다르다. 기본소득의 개별성, 즉 개인에게 지급된다는 특징이 젠더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리라 보는 것은 다소 비약이다. 기본소득은 가사임금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전원에게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가사노동 등 재생산노동에 대한 가치부여라고 볼 수 있는가? 여성이 ‘그림자노동’을 떠맡고 있는 상황을 기본소득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소득이 여성의 해방에 특별히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 절차가 남았다. 만약 기본소득론자가 ‘모든 인간의 해방이 이루어지면 여성의 해방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굳이 기본소득과 함께 페미니즘을 말할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적 급여 확대vs.기본소득 도입

장지연 연구위원은 강연에서 제시된 기본소득 시행단계 중 청년, 노인, 장애인, 농어민을 대상으로 하는 1단계 기본소득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사회수당’의 범위를 약간 확장한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급여의 필요성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임금이 지나치게 낮은 일, 위험한 일,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일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급여는 빈곤해소만이 아니라 일자리의 질 개선에도 기여한다. 기본소득도 사회적 급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김은희 위원장이 속한 녹색당이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몇 십 만 원 정도로 그 액수가 낮다. 이 수준의 기본소득으로는 사람들의 구매력을 조금 높이는 것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녹색당이 주장하는 수준의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것보다 국가가 교육, 돌봄, 의료 등 공공서비스와 사회복지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확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보다 세금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급격하게 올려도 (추가로)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요. 기본소득 하나. 다른 건 다 안 하고 그거 하나를 해야 돼요.”

장지연 연구위원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먼 훗날에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전면적 기본소득을 논의하기에는 때가 이르다는 것이 그녀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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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의중인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김은희 위원장이 제안하는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담고 있다. 장지연 연구위원은 이 상상력에 절차적 구체성을 더하여, 김은희 위원장이 제안하는 1, 2단계 기본소득 사이에 공공인프라의 확충이 삽입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두 사람의 토론은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사회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과정에 대한 이견의 나눔이 아니었을까.

한국여성노동자회 홈페이지 자료실에 포럼 3강, ‘젠더관점에서 본 기본소득’의 발표문과 토론문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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