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공공병원을 바로세운 병원 노동자들의 860일!! :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

부패한 공공병원을 바로세운 병원 노동자들의 860일!!
: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의료연대본부 충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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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주시 노인전문병원분회는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2013년 10월 20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충북지부 분회를 설립한 뒤 단체교섭을 진행하여 총 104개의 단체협약 조항 중 9개만을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노조는 임금동결에 합의하면서까지 대화로 단체교섭을 마무리 지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 측이 일방적으로 인원 보충 없는 간병 3교대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그럴 경우 한 개의 방을 책임지던 간병사 한명이 두, 세 개의 방을 맡아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는 간병사들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감당해야 하며, 곧바로 환자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노조는 간병사들에게 너무 무리한 근무조건이라는 사실을 떠나 환자들에게 제대로 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음을 들어 강력히 반대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병원 측은 CCTV로 환자들의 상태를 체크해 나가면 된다는 어이없는 대안을 들고 나왔다. 충북지방노동위원회의 공익위원들도 노조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장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분회는 지방노동위원회를 통해 합의점을 찾으려 최선을 다했으나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2014년 3월 29일 노조는 파업을 선언했다. 860일 간 계속되었던 투쟁의 시작이었다. 의사 포함 전체 162명 직원 중에 조합원이 100여명이었다. 더 이상 환자들을 담보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병원장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조합원들의 분노는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결기로 가득했다. 당장 경찰차 13대가 병원 마당을 가득 메웠다. 상황이 급변하자 병원 측은 대체 인력을 투입하였고, 동원된 용역 깡패들은 몽둥이를 차고 병원을 돌아다니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얼음장 같은 바닥에서의 노숙, 그러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은 2009년 청주시가 조례를 통해 만들고 157억원의 혈세를 들여세운 청주시민의 재산이다. 그해 효성병원에 위탁하면서 ‘운영자가 이득금을 사용할 수 없고 사회로 환원’하도록 정해져있는 공공병원임을 조례로 분명히 했다. 그러나 효성병원이 유효기간이 지난 의약품과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를 쓰고 병원 노동자 임금체불 및 부당해고 사태를 일으키자 운영권을 CNC 재활병원에 넘긴다. 하지만 ‘전국 최고의 환자 중심 병원’과 ‘여성친화기업’을 만들겠다’ 호언장담을 했던 한수환 병원장 역시 다종다양한 불법 편법을 동원하며 효성병원에 한 수 더 뜨는 행태를 보였다. 의료행위를 간호조무사, 간병사에게 떠넘기고 응급상황에 대비한 야간당직조차 배정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구급약품, 임상검사 시약을 CNC 병원에 빼돌리고, 미신고식품업자로부터 식자재를 납품받고, 유령직원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임금을 체불하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조합원을 해고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렇게 위탁업체가 바뀌면서까지 계속되고 있었던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의 문제는 결국 청주시의 관리감독이 전무한데서 온 결과였다. 이에 노조는 청주시의 직무유기를 시정하고 위탁병원을 교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4월 15일, 병원 측이 노동부의 중재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청주시가 시청 공무원들과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40·50대 여성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천막 등 집회물품을 강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처절히 저항하며 노조는 노숙 농성을 시작하였다.

 그러던 4월 30일, 노조가 청주시의 중재로 청주시청 앞 노숙농성을 자진해산하고 현장으로 복귀한지 열흘 만에, 병원 측은 정년을 내세우며 조합원 11명에 대한 해고를 통지하였다. 해고된 조합원들은 올해 만 65세인 48년 생, 만 64세인 49년 생 등으로 청주시와 씨앤씨병원이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위수탁 계약을 체결하던 2012년에 이미 만 60세를 경과하여 근무를 해온 터라 이제 와서 60세 취업규칙을 운운하며 조합원들만 계약해지하는 것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였다. 이에 노조는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을 다짐하였고, 규탄 집회와 기자회견, 서명운동, 결의대회 등을 가열차게 진행해 나갔다. 하지만 한수환 병원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파괴 브로커인 김동기를 행정부원장에 앉히며 노조의 투쟁에 강경 대응하였다.

 지난한 투쟁은 계속되었고 병원 측의 방해공작으로 조합원들의 이탈이 하나, 둘 늘어가기만 했다. 분회장 권옥자는 이런 식으로 성과 없는 투쟁이 계속되는 것에 분노가 일었다. 10월 2일 분회장은 총력투쟁을 다짐하며 조합원들 앞에서 삭발을 하고 무기한 노숙단식농성에 돌입하였다. 조합원들은 여자로서는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삭발을 하고 있는 분회장의 모습을 보며 오열을 터트리고 안타까움에 신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분회장은 이를 악물었다.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으리라.’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병원 측의 비아냥거림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곧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분회장의 흔들림 없는 의지에 더 강하게 뭉쳐갔다. 일주일 뒤에 있었던 시청 앞 촛불 집회에서 조합원들은 ‘그래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많은 시민들과 동지들이 있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고 큰 힘을 얻었다.

 사태가 확산되자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가 실시되고 중앙노동위원회에 심판회의가 열렸으며 보건복지부의 실사도 진행되었다. 이와 함께 병원 전면 파업이 진행되고 시청 마당에 300~400명의 민주노총 연대 집회장에서는 함성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흔들림 없는 투쟁은 11월 1일 해고자 전원 복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지만 병원 측과의 단체교섭은 결렬이 거듭되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찬 하루를 시작해야할 2015년 새해 아침에 분회장을 포함한 총 10명의 조합원이 또 다시 해고 통지를 받고 말았다. 안하무인식의 한수환 병원장의 태도에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부당해고임을 인정하고 병원 측에 시정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어처구니없게도 한수환은 위탁운영 포기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청주시의 태도였다. 당시 170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는 상태였는데도 다른 운영기관을 선정하지 않고 병원을 폐원시켜 버렸다.

 간병사와 심정적으로 더 가까운 환자들이라 할지라도 병원과의 관계에서는 약자일 수 밖에 없다. 조합원들에 대한 악선전은 물론이고 조만간 물도 불도 끊는다는 말에 하나 둘 퇴원 수속을 밟고야 말았다. 그래도 친한 환자 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절대로 퇴원을 안 시키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병원 측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일터로 전화해서 환자를 데려가라고 독촉을 해대니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어서 오랫동안 병원생활을 하고 있었고 오갈 데가 없으니 안 나가겠다고 끝까지 버티고 있었지만 병원 측은 결국 밥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인간 이하의 행동에 분노한 조합원들은 할아버지가 나가시기 전에 따뜻한 밥을 챙겨드린 후 다른 병원으로 옮기도록 도왔다.

 2015년 6월6일자로 폐업은 현실화되었고 전 조합원이 해고상태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 60명의 조합원들은 노숙농성으로 폐업에 맞서 떡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어가며 희망을 잃지 않고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천막을 치는 건 불법이라 하여 다 뜯어가 버리니 그저 노숙 상태로 농성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연대 투쟁에 함께 한 남성노동자나 단체 활동가들과 찬기가 올라오는 바닥에서 잠을 청하곤 했던 분회장 권옥자는 치료사인 23세 조합원도 67세인 조합원도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그 길바닥에서 자게 할 수는 없었다. 특히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는 위험천만한 노숙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동료가 아니라 내 동생 같고 내 엄마 같은 존재들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한없이 짠하고 애처로운 내 피붙이 같은….

분신 시도에도 바로 잡히지 않는, 차디찬 현실 앞에서

 김경숙상을 수상하게 된 청주노인전문병원 분회장 권옥자는 공교롭게도 김경숙 열사와 같은 1958년생이었다.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봉화에서 자랐으며 부모님이 헤어지는 바람에 위로 두 오빠와 여동생 둘과 함께 어머니 밑에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딱 중간에 끼어있던 그이는 어머니의 집안 살림을 돕고 동생들 챙기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그리고 그 당시 누이들이 그렇듯 오빠들 학비에 보태느라 정작 자신은 초등학교까지가 최종학력이었다. 오빠들은 자신을 보고 희생을 했다 하지만 그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권옥자의 꿈은 친구들처럼 서울에 올라가 구로공단에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고향에 내려와 공장 얘기며 기숙사 얘기를 할 때마다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권옥자가 20세가 되던 해 어머니는 고생하는 딸이 보기 안타까워 사업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다. 하지만 권옥자의 고생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업에 재능이 없었던 남편은 자꾸 빈손이 되어 나앉기만 했다. 그래서 살길을 찾아 떠난 곳이 작은 집이 있는 사북이었고 그이는 거기서 제2의 사북사태를 겪으며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5년을 거칠게 살아남으며 세상살이에 밝아질 수밖에 없었고 성격도 활발하고 할 말 다하는 딱 부러진 아줌마가 되어갔다.

그렇게 5년이 지난 뒤 다시 새 보금자리를 찾아들어간 곳이 청주였다. 그리고 드디어 그곳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공장에 들어가게 된다. 남편의 벌이가 안정적이지 않아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던 일이라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개의 회사를 거친 뒤 1995년 청주에서 최고라는 얘기를 듣고 들어간 곳이 AMK였다.

 늘 젊은 여성노동자를 뽑던 그 회사가 처음으로 주부사원을 모집하던 시기라 권옥자도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전자업체였던 AMK에는 이제 막 민주노조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노동조합이 있었다. 그이는 이곳에서 노동조합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였고 2000년 자본철수 투쟁을 거쳐 투사로 거듭난다.

 AMK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 되었지만 회사는 결국 인도네시아로 철수하고 말았다. 권옥자는 투쟁하는 동안 나빠진 건강을 추스르며 취직할 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투쟁에 지친 탓인지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우연히 국가자격증이니 이걸 따놓으면 투쟁할 일은 없겠다 싶어 도전한 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이었다. 처음 실습을 나갈 때는 환자들의 똥, 오줌을 받아낼 일과 환자를 상대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만 상상하며 힘들겠다 싶었는데 전혀 반전의 상황을 경험한다. 내 말 한 마디에 나에게 의지하고 매달리며 행복해하는 노인 환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그들과 소통하며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체질에 딱 맞았다. 그렇게 실습 3일 만에 직업으로 요양보호사를 선택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집에서 가까워 들어갔던 곳이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이었다. 그때가 2010년 10월 7일이었다. 병마에 시달리는 노인들을 도우며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그곳에서의 일은 어이없게도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결국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오지랖 넓은 그이는 분회장으로 거듭나며 투쟁의 전선에 서게 되었다.

 2015년 12월 24일, 청주시는 그동안 공고를 통해 새로 위탁기관을 찾아 나선 끝에 ‘의명의료재단’을 선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노동자의 고용승계에 있었다. 청주시는 고용승계를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거짓말로 60여명 여성노동자의 복직문제를 외면하였다. 분회장 권옥자는 죽기를 각오한 아사단식농성에 들어갔다. 물론 그걸 무서워할 인간들이 아니었다. 단식 30일이 지났는데도 그들은 눈 하나 끔적하지 않았다. 그 사이 청주시는 법제처에 질의를 해 고용승계의 의무가 있다는 걸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수탁자 공고 시 그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합원들은 분노에 치를 떨며 농성을 이어갔고 겨울 찬바람에 동상에 걸려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시련에도 꿋꿋이 버텨나갔다. 그러나 청주시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분회장은 청주시장을 만나 담판을 지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시장은 만나주지 않았다. 그때 그런 결론을 내렸다. 누구 하나 죽어나가지 않고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없구나! 단식도 삭발도 다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이는 집에 사다놓은 휘발유를 떠올렸다.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자신을 활활 태워서라도 그들을 정신 차리게 할 수 있다면 속이 다 시원할 것 같았다. 조합원들에게는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결행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그들에게 우리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을 뿐이었다.

 시청 마당에서 농성이 이어지던 날, 권옥자 분회장은 조합원들에게 다른 곳 상황을 알아보라고 주위를 분산시킨 뒤 자신의 몸에 한말이나 되는 휘발유를 퍼부었다. 그러자 비명소리가 났고 조합원들이 뛰쳐나왔다. 모두들 대성통곡하며 그러지 말라고 외쳤고 권옥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를 고함을 질렀다. 아마도 ‘고용승계 보장하라!’ ‘청주시장 나와라’를 외쳤을 것이다. 사람들이 말리려 달려들자 그이는 라이터를 당겼다. 다행이 휘발유에 담뿍 젖은 라이터는 켜지지 않았고 조합원들은 대성통곡하며 달려가 그이를 안았다.

 하지만 구경꾼처럼 서있던 시청 직원들은 다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떴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그들에게는 일말의 측은지심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더욱 분개할 일은 분회장이 병원에 실려 간 그날 시청 직원이 찾아와 농성장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하고 갔다는 점이다.

 분신 시도가 있은 뒤, 눈길도 안 주던 언론이 분회장을 예의 주시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도 눈에 띄게 노동자의 편에 서있었다. 그리고 2016년 5월 4일 청주시는 청주병원을 위탁기관으로 선정하고 협약을 체결하였다. 문제는 또 다시 고용승계였다. 6월 23일 청주노인전문병원 분회는 민주노총과 함께 전원 복직 총 궐기대회를 열었다. 그야말로 청주시에 있는 모든 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총 동원된 집회였다. 보통 때는 한두 개 밖에 없던 플래카드도 무려 15개를 만들어 집회 장소였던 병원 입구를 뒤덮었다. 여기서 끝장을 보자는 심산이었다. 고용승계 없이 병원이 개원하고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것은 꿈도 꾸지 말라는 엄포였다.

마침내 찾아온 승리의 봄!

 그로부터 한 달 뒤, 7월 22일 청주병원에서 교섭하자는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3일에 걸친 협상 끝에 남아있는 조합원 23명 전원 복직 결정이 내려졌다. 끝내 청주시는 나오지 않았고 타결이 되는 날 청주병원은 쉽게 합의가 된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합의사항도 문서 없이, 배석했던 연대회의 대표 김태정 목사와 서지안 시의원이 증인이 되어 양쪽이 녹취를 하는 것으로 대신할 정도였다. 병원 측은 우선 노조간부 3명부터 복직을 시키겠다고 했으나 분회장은 모든 조합원들이 복직되면 제일 마지막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환자가 생기는 대로 조합원과 비조합원 그리고 일반인을 번갈아가며 투입하여 합의사항을 이행하고 있다.

 농성장을 정리하고 해단식이 있던 날, 끝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23명은 복받쳐 오르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추운 겨울에 길바닥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간들. 경찰들에게 목 졸리고, 용역 깡패들에게 폭력을 당하던 일들, 버스비 한 푼이 아쉬워 전전긍긍하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마냥 다 이뤘다는 승리감에 취해있을 수만은 없다. 분회장 권옥자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찢기고 상처투성이인 노동조합을 제대로 세우는 일과 병원과의 협상으로 조직된 ‘병원 운영위원회’를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에서 추천하는 1인도 포함되는 운영위원회는 병원의 운영을 관리 감독할 수 있다. 이로써 ‘공공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고 ‘노동자들이 행복한 병원’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해낼 것이다.

 숱한 어려움과 폭력적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공공병원의 올바른 운영과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860일간의 투쟁을 진행해온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가 올해의 여성노동운동상 ‘김경숙상’을 받게 되었다. 1979년 군부독재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투쟁했던 YH 여성노동자들의 정신이 2016년 현재 청주시 돌봄노동자들에게로 이어져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김경숙 열사가 살아있다면 권옥자 분회장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글. 박민나
가시철망위의 넝쿨장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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