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토론회 : 여성혐오 넘어, 일과 삶을 리셋하라⑤] “죽도록 일하면 죽는다” – 삶의 중심은 일이 아닌 개인의 생활이어야

※ 지난 2월 23일 국회에서는 대선 토론회 ‘여성혐오 넘어, 일과 삶을 리셋하라’가 열렸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전국여성노동조합, 6개 국회의원실(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남인순, 국회의원 권미혁·송옥주<더불어민주당>, 김삼화·신용현<국민의당>, 이정미<정의당>)이 공동으로 주최하였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는 본 토론회의 내용을 총5회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연재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대선토론회 특집기사 연재를 마무리하며, 한국여성노동자회의 19대 대선정책제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 기자 말

‘이게 나라냐’의 외침에는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국가의 대 개조 요구도 있지만 ‘정말 살기 어렵다’는 절망 또한 함께 있다. 지금이 아니면 늦다. 우리의 삶이 더 망가지기 전에 국민 하나하나의 삶을 보듬는 철학과 이에 기반한 정책 수립과 집행이 절실하다. 새 정부의 주요 과제는 존중받는 노동, 성평등 노동의 실현이어야 한다. 이를 위한 새 정부의 노동분야 국정운영 철학을 제안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 19대 대선 정책 제언

여성인력활용정책이 아닌 성평등 노동정책

국가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산업의 역군으로 불리었으나 저임금과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70년대 여성노동자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저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내몰리고 있는 오늘의 여성노동자들. 어느 시대에나 여성노동자들은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한 국가정책의 수혜를 받은 일이 없다. 지금껏 한국의 여성노동정책은 그 목표가 성평등이 실현된 노동세상, 개개의 노동자가 행복한 노동을 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그저 국가경쟁력 강화가 목표였고, 이를 위한 ‘여성인력활용정책’이 전부였다.

문제는 철학이다. 잘못된 목적지는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라는 제대로 된 좌표 설정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새 정부의 여성노동정책은 지금까지처럼 ‘여성인력활용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목적지는 성평등 실현이어야 하고 분명하게 ‘성평등 노동정책’으로 수립되어야 한다. 성역할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여성의 노동을 ‘반찬값 벌기’로 평가 절하하고 저임금을 합리화하는 철지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결별해야 한다. 정책의 범주도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파편화된 정책이 아니라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고 구조적 차별을 제거할 수 있도록 확장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성평등은 모두의 문제이며 모두의 해결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부터 시작해야

여성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특히 비정규직이라는 차별이 가세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중 비정규직은 53.8%에 이르고 이들의 월평균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 하는 123만원이다. 정규직 남성노동자월평균임금의 35.8%에 불과하다(2016년 8월 기준). 또한 최저임금 미달자 266만 명 중 62.7%가 여성이다.

지난 겨울 온 국민이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저마다 광장으로 나온 대열에 이들이 합류할 수 있었을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조건마저 박탈한 이들이 생존이 아닌 삶을 고민할 수 있을까.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한 발만 헛디디면 천길 낭떠러지다.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삶에서 생존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순간 발생한 것이다. 가장 낮은 곳부터 들여다보고 시작해야 한다. 충분한 생존의 권리, 한 단계 나아간 삶의 권리를 획득하는 일.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경력단절이 아닌 고용단절의 해법 필요

경력단절은 주로 결혼 후 출산이나 육아 등의 사유로 노동시장에서 일하기 어려운 여성들이 자발, 혹은 비자발적인 이유로 퇴거하여 노동자로서의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하지만 이 뒤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 언제 그만두어도 아쉽지 않은 보조적인 일, 아이를 맡기는 비용보다 낮은 임금. 근본적으로 여성에게 차별적인 노동시장 구조 탓에 여성의 일자리는 대부분 가사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지켜낼 만큼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다.

여성의 경험은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나이듦이 연륜으로, 숙성된 노하우로 인정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의 나이듦은 장식 기능을 상실한 쓸모없음으로 취급된다. 더 이상 부리기 쉬운 어린 여성이 아닌 경험이 축적된 여성들은 수순대로라면 승진을 해서 관리자로 진출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강고한 유리천장에 부딪힌 여성들은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지 못 하고 퇴출된다. 굳이 출산과 육아를 이유로 한 경력단절이 아니더라도 40세 전후의 여성들은 이런 이유로 전업의 위기에 봉착한다. 이런 이유로 경력이 단절 되는 것이 아니라 고용 자체가 단절되는 ‘고용 단절’과 만나게 된다.

지금껏 경력단절의 해법으로 제안된 것은 시간제 일자리나 직업훈련과 재취업 알선 등이 전부였다. 경력단절 후 재취업 유도 정책이 전부였던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고용단절’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아닌 개인독립생활자 모델로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고,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모든 정책은 부부와 비혼자녀 중심의 4인가족 모델로 설계되어 있다.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여성을 가사와 양육의 전담자로 설계한 오래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아직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은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차별과 배제를 가져온다. 여성은 주 부양자가 아니기 때문에 낮은 임금이 당연하고, 각종 수당이나 연금혜택 등 모든 정책 대상에서 배제된 결과를 낳았다. 오늘날 남성 혼자 온전히 가족부양의 책임을 지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여성은 어떠한 형태로든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2등 노동자로 취급받고 있다.

모든 여성과 남성이 만나 아이를 낳고 가족을 꾸린다는 것은 오래된 꿈일 뿐이다. 다양한 선택과 다양한 삶의 양태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인정의 기반은 모두가 개별자로서의 독립이 가능한 ‘개인독립생활자 모델’로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정책 뿐 아니라 주거정책, 복지정책 등 국가운영 전반의 기조여야 한다.

삶의 중심은 일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이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의 삶은 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야근, 회식, 휴일노동으로 구성된 장시간 노동의 삶은 OECD 2위의 장시간 노동국가라는 귀결로 이어진다. 장시간 노동은 개인의 생활을 삭제한다. 휴식 시간, 건강한 음식을 해 먹을 시간, 가족을 돌볼 시간, 사회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시간 등이 삭제된 삶은 몸과 정신, 관계의 피폐를 가져온다.

장시간 노동의 이면에는 3명이 일할 자리에 2명을 채용하는 관행, 하루 8시간 계약을 하고 노동자의 24시간과 계약했다는 착각, 새벽까지 이어지는 회식문화 등 삶에 대한 존중 없는 전근대적 노동문화가 있다. 또한 낮은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도록 일하면 죽는다.’ 더 늦기 전에 노동자들에게 삶을 돌려주어야 한다. 전 국민에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는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삶은 중심은 노동이 아니라, 회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어야 한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자들에게 개인의 생활을 돌려주기 위해 설계되어야 한다. 적정시간을 일해도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고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지 않도록 노동현장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남성도 가사와 육아의 책임자

우리나라 일ㆍ가정양립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성만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정책은 여성이 육아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원책으로 맞추어져 있다. 그 결과 나온 정책이 여성이 육아를 하고 남는 시간에 일을 하면 된다는 시간제 일자리 정책인 것이다.

남성들은 스스로를 가사와 육아의 담당자로 여기지 않고 있다. 여성들에게 집중된 가사와 육아로 인해 여성들은 슈퍼우먼이길 강요받는다. 여성들은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으로 출근한다. 남성과 여성의 가사·육아 시간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회사는 손쉽게 야근과 휴일근무를 담당할 인력으로 남성을 설정한다. 그 이유로 여성의 차별을 정당화 한다. 하지만 남성 역시도 가정 내의 가사와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양육자이며 가사노동의 책임자임을 사회와 개인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 여성에게 전담된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나누어야 한다. 이는 제도개선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 모두의 책임임을 분명히 하고 이중양육자 모델을 기초로 하여 정책을 설계하고 사회적 인식개선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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