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를 씁시다”, “가정관리사로 불러주세요” : 가사노동자 협동조합의 경험

아래글은 Open Democracy에서 발간한 e-book _가사노동자 말하다
: 권리와 인정을 위한 전지구적 투쟁 본문 p136에  실린 전가협 인천지부장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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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를 씁시다”, “가정관리사로 불러주세요”
: 가사노동자 협동조합의 경험

심옥섭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인천지부장

 

대한민국에서 가사노동자가 되다.

여러가지 자영업을 하다가 나이가 들어 가게를 접었다. 좀 더 시간에 자유롭고 세상 구경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다가 우연히 구청 구민신문에서 가정관리사 모집과 교육을 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전혀 경험 없는 새로운 일자리로 직업을 바꾸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평생 살림을 해왔으니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2009년 9월 54세의 나이로 3일간의 교육과 4시간씩 2회 현장실습을 마치고 가정관리사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교육기간 동안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지난 얘기도 나누고 일하는 것에 대해서 자세한 교육도 받았다. 또한 전국가정관리사협회(이하 전가협)가 어떤 곳이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강의를 들었다. 특히,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하라고 격려해 주어 신뢰를 가지고 전가협에 가입했다.

전가협은 가사노동자가 회원이며 주인인 경제 공동체로 2004년 설립했다. 회원들의 자율적인 참여와 회원들간의 협동과 단결의 원칙에 기반하여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함으로써 참여와 자치를 실현하며 노동자협동조합의 정신과 철학을 추구하고 있다.

 

 

가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엄마가 하는 일에 대해 한번도 부끄러워하거나 하지 말라고 얘기 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누구 앞에서도 떳떳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아이들이 제발 하지 말라고 적극 말렸다. 남의 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옛날부터 내려오던 안 좋은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마 건물 청소나 식당 등에서 일한다고 했으면 덜 반대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가정관리사라는 이름을 개발하고 사용하도록 장려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도 가사도우미 아니면 파출부, 아줌마, 이모 등으로 불리는 청소 아줌마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식 개선과 각 가정의 가사를 돌봄으로써 기여하는 우리의 일이 ‘노동’으로 인정받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사회인식 개선 운동의 일환으로 전가협은 ‘가정관리사 호칭 사용하기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이 캠페인은 가사노동자를 비하하는 표현에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가사노동이 노동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부여하고 가사노동자의 직업적 전문성을 강조하고 있다.

 

가사노동자의 노동 현실 개선 위해 계약서를 써야 한다.

지부장으로 선출된 이후로 나는 더이상 현장에서 일하지 않는다. 대신 지부 운영을 맡아서 하고 있다. 가정관리사 회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선, 관리하는 일이 가장 일상적이고 기본적인 전가협 지부의 활동이다. 가사노동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가사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객이 기본업무를 넘는 무리한 노동을 요구하거나 회원 가정관리사가 근거없이 도둑으로 몰리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경우에는 개별 가정관리사가 아니라 지부 사무국에서 조치를 취하거나 해당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한다. 특히, 지속적으로 가정관리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고객의 경우에는 가정관리사의 인격과 존엄에 위협이 된다고 보고 가사서비스 제공을 중지하기도 한다.

가장 빈번한 고충은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이다. 전가협 회원 가사노동자들은 정해진 시간 동안 충실히 일하고 최대한 만족스러운 노동의 결과를 제공하는 숙련된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고객들의 요구와 불만은 끝이 없다. 짧은 시간 동안 가능한 한 많이 부려먹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거의 한 달 동안 미루어 놓은 집안일을 가정관리사가 기본 업무시간인 4시간 안에 모두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수퍼우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이 너무 많이 밀려있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관리사의 능력을 탓한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거나 고객을 대응하기 위해 감정 노동이 요구되는데 이 부분 매우 힘든 지점이다. 특히, 고객이 인격적 대우를 안하면서 관리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일 때 일에 대한 회의감이 크다. 이 일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지지 부족하기 때문에 가정관리사 교육을 받고 일을 시작한 후에 적응기간을 넘기지 못하고 가정관리사 일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주어진 일을 정해진 시간 내에 빠르게 처리하려고 하다가 다치는 경우도 빈번하고 장기간 반복된 무리한 노동으로 오래 일한 노동자들은 몸이 상하는 경우도 많다.

가정관리사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는 전문가와 함께 2013년에 가사노동자 건강권을 위한 연구를 실시했다. 건강 조사 결과 근골격계증상과 직무스트레스가 특히 높고 우울증도 한국 여성 평균보다 높게 나왔다.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인식변화와 법,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함을 확인하고 2014년 전문가들과 가사노동자들이 함께 가사노동 업무매뉴얼을 개발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가사노동 업무 내용이 4시간 기준으로 70여 가지가 넘는 것이 확인되었고, 각 세부 노동 별로 소요되는 시간 등을 표준화 하여 제시했다. 또한 이 매뉴얼을 기준으로 가사서비스 제공을 위한 약관과 표준 계약서를 개발했다. 약관에는 고객의 의무와 가사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위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서비스 제공 내역과 시간 공간 등에 대한 기본 사항과 지불 방법 등에 대한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이전까지 가사서비스 이용과 제공에서 계약서 작성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풍토였다. 우리는 가사노동 업무매뉴얼 개발로 ‘계약서 쓰기 실천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계약서 개발과 함께 거의 일 년간 월례회 때 마다 계약서의 의의와 작성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고객과의 계약서 작성은 쉽지 않았다. 그동안 계약서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서 계약서 쓰기를 꺼리는 고객이 많았다.

그렇지만 가사서비스 이용계약서는 고객이 가정관리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못하도록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고, 고객도 배상이 필요한 경우 배상보험사에 계약관계를 증명할 서류로 계약서를 필요로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객도 계약서의 필요성을 깨닫고 점차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 가정관리사 회원들도 계약서를 쓰고 일하는 것을 든든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적극 고객 설득에 나서 전체 1/3 정도 고객과의 계약서쓰기를 진행하고 있다. 계약서는 고객과 가정관리사 그리고 지부가 서명한다.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노동권 보장하라!

현재 대한민국은 60여 년 전 1953년 한국 전쟁 직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에서 가사노동자는 사업주가 개인이고 가사노동이 사적 공간인 개별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법으로 보호하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국에만 30만명 정도의 가사노동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고용불안, 임금체불, 부당한 대우, 작업 중 부상 등을 당해도 구제 받을 데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다. 우리가 겪는 부당한 차별과 현실적인 어려움은 법적으로 가사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데서 주로 기인한다.

가정관리사 중에는 중장년층이 많은데, 이들은 일하고자 하는 욕구도 많고 고객들에게도 호응이 좋고 일솜씨도 좋다. 하지만 오랫동안 일한 결과로 근골격계 질환, 손가락관절이나 팔다리,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작업 중에 다치는 경우도 있지만 가사노동자는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사회보장에서 제외되어 산재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

회원 관리사가 1년4개월 전에 고객 집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손이 닿지 않는 벽 윗부분을 변기 위에 올라서서 닦다가 균형을 잃고 뒤로 떨어지면서 손목이 부러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대책 없이 혼자서 부러진 팔을 붙잡고 병원으로 가서 수술 받았다. 수술비용도 본인이 부담해야 했고,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 기간 동안 일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후유증이 남아 힘든 일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고객이 집에 있었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험에 청구할 수도 없었다.

가사노동자가 법적으로 보호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객들이 정기적으로 일하러 오는 가정관리사에게 미리 통지해준다거나 하지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사를 가거나 전근하거나, 또는 부모님들과 함께 살게 된다던지 하는 일들은 미리 예정되어 있음에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오래 고정적으로 가던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해고통지를 받으면 가정관리사는 다음 일자리가 나올 때까지 대책없이 기다려야 하지만 가사노동자의 생활이 불안정해지는 고충에 대해서는 고객도 법도 상관하지 않는다.

노동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기에 처한 또다른 어려움은 고객이 일한 보수를 제대로 주지않고 형편이 어렵다며 차일피일 계속 미루거나, 가사서비스에 불만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아서 돈을 주지않는 경우에도 구제 받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서 가사노동자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임금체불에 대한 진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더욱이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호를 위한 법이 없는 상황에서 최근 대규모 자본을 가진 기업들이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스마트 폰 앱을 개발하여 가사노동 시장에 경쟁적으로 진출하면서 가사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이에 근로기준법 개정과 가사노동자에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등의 적용이 절실하다.

전가협은 가사노동자에 대한 인식개선을 도모하기 위해 ‘가정관리사 호칭 캠페인’, ‘공정한 일터 캠페인’ 등 캠페인을 지속하고 가사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해 법 제도 개선을 촉구해 왔다. 2014년에는 정부의 가사노동자 보호 방안 마련 발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정부는 약속만 하고 이를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우리 가사노동자을 위한 가사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는 법안 내용을 만들어 국회의원에게 보냈다. 그리고 2016년 2월 초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하지만 19대 국회의 회기 종료로 인하며 법 제정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우리는 다시 올해 20대 국회에서 다시 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가사노동자들을 위하여 하루 빨리 국제협약에 비준하고, 불안한 노동시장에 보호장치 없이 내몰려 있는 가사노동자들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현실적인 정책 마련하고, 가사노동자에 대한 기본적 권리 보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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