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부의 종합대책을 요구한다!

[성명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부의 종합대책을 요구한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분노와 좌절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여성노동자회는 지난 1995년부터 여성노동상담실 ‘평등의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접수된 상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난하게 목도한 것은 기업과 정부기관의 지독한 가해자 관점이다.

기업은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남녀관계 혹은 개인생활로 치부하고 덮으려고만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격리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정당한 절차에 따른 가해자 징계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또한 회사 내에 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피해자에 대한 왕따와 괴롭힘이 시작된다. ‘네가 꼬리쳤잖아’라거나 ‘꽃뱀’이라는 꼬리표는 당연하게 따라 붙는다. 피해자에 대한 징계나 해고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개 가해자는 회사에서 일정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이러한 2차 가해에 저항하기 힘들다.

서울여성노동자회가 2016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들의 57%가 회사로부터 불이익 조치를 당했고, ‘파면, 해임, 해고, 그 밖의 신분상실에 해당하는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와 ‘집단 따돌림, 폭행 또는 폭언, 그 밖에 정신적·신체적 손상’의 불이익 조치가 각각 1순위로 나타났다. 우리 법에서 규율하고 있는 조사 및 처리 과정에서의 사업주 책임과 불리한 조치 금지에 대한 내용이 지나치게 허술하여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는 정말 힘들게 용기를 내어 노동부에 직장 내 성희롱 진정을 넣어 보지만 근로감독관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과 사건으로 인정하는 범위가 협소하여 한 번 더 상처받는다. 예를 들어, 근로감독관들은 회식 자리 이후 벌어지는 성희롱·성폭력에 대해서는 직장 내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다. 분명 업무관계의 위력에 의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협소하게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노동부에 접수된 성희롱 진정 건수 552건 중 실제 기소된 건수는 단 1건에 그쳤다. 이외 불기소처분이 26건, 과태로 66건, 행정종결이 453건이었다.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로 경찰에 가면 조사 과정에서 한 번 더 좌절을 경험한다. 가뜩이나 위축된 피해자에게 고압적인 경찰의 조사는 고통의 연속이다. 경찰로부터 “네가 예뻐서 그래.”라는 말을 들은 내담자도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검찰로 넘어가면 검찰은 피해자들에게 피해자스러움의 기준을 요구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상태여야만 피해자로서의 증명이 완성된다. 또 침착해선 안 되지만 진술은 일관되어야 하는 모순을 요구한다. 피해자의 기준을 넘지 못한 피해자들은 그것을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받는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좋아한다, 피해자가 메신저에 친절하게 응해 주었다,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셨다, 가해자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그러나 좋아한다고 상대방의 동의 없는 성적 행동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여성노동자는 사장이나 상사의 메신저에 친절하게 응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술을 많이 마셨다고 강간해도 괜찮다는 것은 아니고, 가해자가 기억이 없다고 죄가 성립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또 피해자가 몇 년이 지난 후에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 지나간 시간 동안 피해자는 수천 번, 수만 번을 사건에 대해 곱씹고 고민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가해자는 면죄부를 얻고 기존 지위를 유지해 나간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이 이렇듯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은 우리 사회 여성혐오와 직장 내 낮은 지위, 지나치게 낮은 여성 비율 등 존중받지 못 하는 여성노동자의 위치가 크게 영향을 미친다. 고압적이고 위계적인 직장 내 문화, 음주 위주의 잦은 회식·접대 문화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 정부 기관 담당자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도 문제 해결을 더디게 한다. 법적인 구멍도 매우 크다. 지난 8월, 여성노동자회를 포함한 여성단체들의 제안으로 이용득 의원은 직장 내 성희롱 관련 법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직장 내 성희롱을 신고 받거나 인지한 경우 즉시 조사하여야 할 의무는 물론 조사과정과 징계 등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마련한 사업주 책임 강화 및 불리한 조치에 대한 내용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 법안은 계류만 되어 있을 뿐이다.

지난해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마빈 주커 판사는 “성폭행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방이 동의했는가?’ 이것 하나뿐”이라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상대방이 ‘YES’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위법한 행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언제쯤 마빈 주커같은 공무원을, 직장상사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도 가해자 관점으로 미루어 짐작하지 말고 피해자를 중심으로 두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정부와 사회구성원 모두의 각성이 필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여성의 평등권과 존엄하게 노동할 권리에 대한 심각하고도 직접적인 침해이다. 정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일상화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근절을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17. 11. 9.

한국여성노동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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