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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016 여성노동자 리더십 교육] 나? 여성노동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 3일차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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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4] 여성노동과 정치, 친구 맺기 / 은수미(정치인)

더불어민주당 전(前) 국회의원이자 현재는 원외 정치인으로의 실천을 고민하는 은수미 전 의원이 강의하였다. 영화를 통해 여성과 노동 그리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은수미 전 의원이 국회 안팎으로 정치를 하며 겪은 사례를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과 앞으로 필요한 변화에 대한 견해를 말하였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Two Days One Night, 2014)의 주인공 산드라(배우 마리옹 코티야르)는 급작스럽게 해고를 당할 위기에 놓이고, 주말 동안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분투한다. ‘어차피 누군가는 잘린다(해고된다’, ‘넌 우울증이 있고 성과가 떨어진다’는 등의 말을 듣는다. 영화가 끝난 후, 산드라의 남은 삶 동안 이러한 경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인지 여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영화 카트(2014)는 이랜드 홈에버 여성노동자 투쟁 실화를 다루고 있다. 여성노동자 대오가 어떻게 와해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가정이 있는)여성이기에 그녀들은 노동현장에서도 투쟁현장에서도 이중의 부담을 진다. 차이나타운(2015)은 자신의 ‘쓸모’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척박한 환경을 통해, 말 그대로 매일 하루씩의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여다볼 여지를 준다.

은수미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여성노동자의 처우는 남성노동자에 비해 전반적으로 열악하다. 남성 정규직 노동자가 100 만큼의 돈을 번다고 가정할 때, 남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55.5, 여성 정규직 노동자는 69.5,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43.2 만큼의 돈을 번다. 노동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었을 확률은 여성 노동자는 54.3%, 남성 노동자는 35.3%로 여성 노동자 쪽이 훨씬 높다. 더욱 불안정한 형태인 시간제 일자리 중 여성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2.8%. 여성이 얼마나 노동시장에서 주변부로, 척박한 곳으로 밀려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것도 자식의 사망 장면이 종일 전국에 중계되는 끔찍한 일을 그 부모가 겪도록 하는 기업이 떵떵거리며 잘만 살고(2013년 구미 불산 사고), 20·30 젊은 청년세대가 연달아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목숨을 잃고 있는 와중에, 재벌가(家)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린이날 선물로 백억 대의 돈을 받는 이 사회에서.

그러나 저항하기는 쉽지 않다. 악(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악한’ 사람이 아닌 ‘평범한’, 때로는 심지어 ‘모범생인’ 사람에 의해 자행되기도 한다. 영화 더 리더(The Reader, 2008)의 주인공 한나(배우 케이트 윈슬렛)는 법을 어긴 적이 없는, 말하자면 ‘준법 시민’이다. 나치에 부역한 죄로 감옥에서 사는 동안에도 ‘모범수’이다. 과거 나치의 집권은, 홀로코스트는, 합법이었다. 한나는 언제나 그녀가 지켜야 할 규율에 충실히 따랐다. 그런 그녀를 세상은 가해자, 죄수로 규정한다.

한나가 저지른 죄는 그녀가 인식 했는가 아닌가를 떠나 정당화할 수 없고, 씻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에 목숨을 걸고 ‘인간을 살린다’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나를 비롯한 나치 부역자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중 몇이나 될까?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다른 선택, 더 나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고민은 매트릭스(The Matrix, 1999) 이야기를 들으며 든 고민과 연결된다. 내가 알던 세상의 민낯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파란 약을 먹고 환상 속에서 살 것인가, 빨간 약을 먹고 저항할 것인가?

은수미 전 의원은 여성노동자의 현실 다음으로 20·30 청년노동자의 암울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불안정한 고용, 낮은 임금, 터무니없는 노동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년들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이 청년들을 정치의 전면에 내세워 변화를 만드는 데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은수미 전 의원은 말한다. 그녀는 의원으로 일하면서 정치인이자 여성으로서 갖은 수모를 겪었다. 전화로 욕설을 듣거나 술을 끼얹히는 등. 젊은 시절엔 감옥에서 죽음 가까이 가는 경험을 했다. “매일, 매 순간 두렵다. 아침마다 용기를 낸다. ‘아, 괜찮아!’” 우리 모두가 ‘불온해지길’ 바란다는 은수미 의원은 기득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득권은 당당하게 빼앗는 것입니다...(중략)...(그리고 때가 되면)당당히 빼앗기세요.”

후반부가 다소 산만했지만 전체적으로 큰 울림을 준 은수미 전 의원의 강의 중 가장 기억에 깊게 남은 건, ‘왜 가난한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녀가 답한 내용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사회의 변혁과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열악하다. 방향을 불문하고 변화 자체를 감당할 수 없고, 투표할 시간이 없어서 투표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들의 삶은 어떤 정교한 이론보다 복잡하다. 정치가 현실의 복잡함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여성노동자의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어떻게 우리의 현실을 가지고 정치와 만날 것인가?



[강의5] 여성노동정책, 어디로 가야하는가 / 이주희(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마지막 강의를 맡은 이주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여성노동의 현주소와 지난 정부들의 여성노동 관련 정책을 검토하고 앞으로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주희 교수는 지금의 한국사회는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고 소득분배가 불평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시장 정의(market justice)와 사회 정의(social justice)의 확립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 양극화와 이중시장 구조의 하층엔 여성이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 얘기를 하자면 당연히 여성 문제를 다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여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노동조합 조직률 모두 남성에 비해 낮으며, 앞선 강의에서 은수미 전 의원이 지적했듯이 남성에 비해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임금은 낮다. 남성노동자는 정부에 맞선다. 여성노동자는 경우에 따라서 (남성위주인)노동조합에도 맞서야 한다.



1. 통계의 오류

정부와 노동계가 말하는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은 20%가량 차이가 난다. 통계청의 경제활동 인구조사는 인구학적으로는 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지가 문제다. ‘당신은 임시 일용직입니까, 상용직입니까?’를 묻는 문항에서 ‘임시직’으로 대답한다 해도, 부가조사의 ‘고용계약에 기한이 있는가’라는 문항에서 ‘아니로’라 답하면 통계에서 정규직으로 넘어간다. 이주희 교수가 직접 조사한 결과, 정부는 정규직이라 하고 노동계는 비정규직이라 하는 이 20%의 노동자들은 여타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을 하고 있었다. 임금도 고용보험 적용률도 (여타 비정규직 비해)더욱 낮았다. 이 20%의 차이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정부 통계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이 안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계의 기준으로 따지면 약45%, 즉 과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한다.

특수고용직에 대한 통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견된다.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당신은 자영업자인가 임금노동자인가’로 응답자가 일단 분류가 되는데, 한 번 ‘임금노동자’로 분류되고 나면 자영업자의 분류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 자영업자 중 특수고용직이 있다. 정부 통계에서 특수고용직으로 인정받으려면 임금노동자여야 한다. 이주희 교수가 산정한 기준에 따라 조사를 하면, 전체 노동자의 2~3%가 특수고용직이라는 정부의 통계와는 달리, 약6%가 특수고용직이다.



2. 열악한 처우와 낮은 지위

이주희 교수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남성 정규직의 임금이 100이라 할 때, 여성 정규직 노동자는 67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36을 번다. 임금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 또한 낮다. 유리천장과 유리벽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규모 있는 기업들의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을 보면, 노르웨이는 40%에 달한다. 노르웨이는 특히 높은 경우이고, 그래도 선진국들은 평균 11%, 즉 임원이 10 명이면 그 중 1명은 여성이다. 이것도 결코 높다거나 공평하다고 보긴 어렵긴 하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여성 임원 비중은 1% 남짓이다. 임원 100명 중 단 1명만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3. 여성노동 관련, 역대 정부의 정책

이렇듯 여성에게 무척이나 척박한 한국의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해 왔을까. 1985년에 UN은 세계 모든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를 주장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다(노무현 정부 때 정식 명칭이 현재의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변경). 제4조의 1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가 “여성의 직업능력 개발 및 고용 촉진을 지원”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과거 개발독재 시기에 국가는 여성노동자의 노동력을 싼 값에 썼고, 이 시기에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환경에서 노동을 하여 당시 한국 경제의 근간을 마련했다. 결과적으로 개발독재를 하는 국가의 요구에 맞게 정책이 실행됨에 따라 여성노동자는 더욱 질 낮은 일자리에 집중된 것이다.

1995년엔 여성발전기본법이 제정되었으나, 이 시기에 실제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지급(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6조의 2)’이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효성이 부족하다.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역대 한국 정부 중에서 가장 여성친화적이었다고 이주희 교수는 회상한다. 현재 여성부(여성가족부)의 전신인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1998)되었고,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1999)되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건은 바로 간접 차별(Disparate Impact)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간접차별은 차별을 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없다 해도 그 결과가 특정 집단에게 불이익이 되는 것을 말한다.)

2003년에 들어선 노무현 정부시기에 남녀고용평등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로 명칭이 바뀌었다(2007). 이주희 교수는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말 자체는 일단 좋다. 하지만 이것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지켜진다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아마도, 이미 남성과 여성 간의 권력 차이가 분명하고, 무엇을 (임금이 매겨지는)노동이라 간주하고 어떤 노동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자체가 남성중심적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6년에 도입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AA)는, 쉽게 말하자면 ‘차별을 위한 차별로 보이는 것.’ 여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조치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적극적 고용개선조치는 분명 중요한 의의를 가지지만, 앞서 시행된 나라들의 사례에서 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여성에게 혜택이 된 한계를 가진다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2008년부터 현재 2016년까지는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부이다. 능력위주 사회에서 가사와 양육의 부담을 지는 입장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과 동등하게 경쟁하는 건 어렵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특히 해롭다. 보수정부 하에서 여성노동은 전면적으로 비정규직화 되었다. 2010년부터 시행된 경력단절여성등의 경제활동 촉진법은 그 효과가 미미하며,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을 당연시하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한 조치 역시 여성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를 확산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4. 앞으로의 고민

지난 정부의 여성노동 관련 정책들을 살펴본 결과, 실효성을 내지 못 한 정책이 있는가 하면 본래 취지가 무색하게(라는 말은 본래 취지, 에서 정부를 신뢰하는 정도의 호의적인 해석을 전제로 해야 하겠으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정책이 있었다. 앞으로의 대안을 모색하려면 어떤 고민이 필요할까?

여성이 가지는 ‘같음’과 ‘차이’ 중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무엇 하나가 늘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매번 상황에 따라 전략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가령, 남녀고용평등은 ‘같음’에, 여성고용촉진은 ‘차이’에 근거를 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같음과 차이 사이에서 치밀하게 계산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대안으로 여성노동자의 미래를 바꾸는 일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 [2016 여성노동자 리더십 교육] 나? 여성노동자, 그리고 페미니스트는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ㆍ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정기탁사업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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