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는 일터에서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 사상과 신념을 검증받고, 성평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욕과 차별을 감내해 왔습니다. 이러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한 피해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노동자가 홀로 견디거나, 개인의 예민함 혹은 사소한 갈등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구조적인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여성노동자들의 곁에 서기 위해,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한 명의 피해자를 위한 자리임과 동시에, 일터에서 반복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명백한 차별이자 인권침해임을 사회에 알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책임 있는 판단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현재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피해자를 지원하며 함께 사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끝까지 홀로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용기가 또 다른 피해자의 침묵을 깨는 시작이 되고,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존엄을 의심받지 않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 기자회견 후기가 더 많은 분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피해자의 곁에 함께 서는 작은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기자회견문과 기자회견 발언 전문을 공유드립니다.
1. 당사자 발언
안녕하세요, 저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인 한 학원에서 근무하다 성차별과 성희롱 등 괴롭힘을 경험하고, 결국 해당 회사를 떠나게 된 김oo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또는 단지 저 개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비영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는 폭력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듣게 되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섞인 편견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은 일을 사회가 함께 들여다보고, 앞으로는 누구도 직장에서 이런 일을 겪고도 '내가 문제가 있나?' 하며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채용 면접을 보는 순간부터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까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대표의 반복적인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습니다.
면접 때부터 사상 검증은 시작되었습니다.
대표는 면접 자리에서 제게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고 물었고, 이후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담긴 발언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대표는 전 팀장이 동석한 회식 자리에서 어떤 피해를 경험했냐고 묻고선 숨길 이유도 없어 이야기해주자 웃으며 "왜 너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저를 대표실로 불러 인터넷에 '오.타.쿠' 세 글자를 검색한 뒤 제 외모를 만화 캐릭터와 비교하며 "거울 좀 봐.", "머리도 그렇고, 안경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풍채도 그렇고..", "주말에 아울렛이라도 가서 옷도 좀 사고 그래~ 여기 주변에 싼 데 많아~"라고 말했습니다.
냄새가 나니 병원에 다녀오란 말에 내과까지 다녀왔습니다.
대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모욕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이것도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지만요.
그 학원에서 고작 한 달을 일하고 난 뒤 저는 끊임없이 제 자신을 검열하게 됐습니다.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정말 문제인가?'.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알던 민지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괴로움이 끝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친척이 소개해 주신 일자리라 그동안 했던 일들을 큰맘 먹고 정리하고 들어간 곳이었으나, 또 다시 생계를 잃은 후에는 다시 생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에 대한 불안, 압박감, 무너진 자존감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간 겪었던 일들로 인해 꽤 긴 시간 자괴감에 괴로워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부터 온갖 여성 혐오적인 발언, 인신공격까지. 참고, 참고 또 버텨왔지만, 그만두고 나서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오더군요. 뒤늦게 대응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사업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었고,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든요.
궁극적으로 저는 더 이상 이러한 문제를 개인이 참고 견뎌야 하는 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참고 버티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존엄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 행동들은 분명 잘못되었다고요.
저는 오랫동안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을 저 자신이 아니라 사회에 던지고 싶습니다.
왜 직장에서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어야 하는지, 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처음 대표와 면접을 봤을 때, 대표는 물었습니다.
"페미니스트야?"
그래서 전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페미니즘을 지향은 하나 지금껏 저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 페미니스트를 검색해보니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하더군요.
그럼 전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맞습니다.
더불어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 대표는 말했습니다. 제 삶이 정상적이진 않다고.
네, 누군가의 눈에 저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이처럼 세련된 정장을 입고 회사에 9 to 6 출근하지 않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습니다. 돈 안 되는 비영리 활동하느라 따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그런데요. 제가 이렇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과 다른 거고 정상이 아닌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검증당하거나 모욕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구도 남들이 택하지 않는 험한 길을 간다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폄하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앞서 말한 것들과 같은 이유로 누구도 자신의 존엄을 의심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최근 이화여자대학교 NGO 여성 활동가 리더십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질문 시간에 한 활동가가 질문을 하자 그분은 "진정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진정하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씀은 달랐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 문제에 대한 세상의 태도가 바뀐다는 뜻, 즉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이 자리에도 섰습니다.
오늘의 진정이 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일을 겪고도 말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법률대리인 발언 - 강미솔 (희망을만드는법)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과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미솔 변호사입니다. 김두나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 진정의 대리인을 맡고 있습니다.
2016년경 게임 및 콘텐츠 업계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래로 일터를 비롯한 생활영역 전반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거나 관련 글을 공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용 또는 계약 관계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이 사건 피해는 채용 면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피진정인은 면접 자리에서 진정인에게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고 질문하였고, “페미니즘이고 여성운동이고 존중하는데 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는 싫어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직무와 전혀 관계없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편견을 드러내는 여성 혐오 발언입니다. 피진정인의 행위는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과 성별을 이유로 고용 영역에서 진정인을 불리하게 대우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합니다.
나아가 피진정인은 대표이자 진정인의 직속 상사로서 진정인의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진정인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적 언동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피진정인은 여성의 성매매, 성범죄 등에 관한 성차별적 발언과 진정인의 이성교제 여부, 성적 지향, 혼인관 등 내밀한 사적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여성의 외모와 신체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에 기반하여 진정인의 신체를 성적 시선으로 대상화하여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언동은 평균적인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으로서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더욱이 피진정인이 운영하는 기관은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입니다. 이러한 기관의 종사자들에게는 일반 사업장에 비하여 더욱 높은 수준의 인권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피진정인은 진정인에 대하여 여성혐오적, 성차별적 발언, 직장 내 성희롱을 반복적으로 하여 진정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적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습니다.
저희는 이번 진정을 통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피진정인의 행위가 차별행위 및 성희롱에 해당함을 확인하고, 나아가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 지정과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진정인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용기가 단지 한 사람의 피해 회복에 그치지 않고, 같은 피해를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발언 - 노헬레나 (대독: 배진경)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책위원회/한국여성노동자회)
2016년 넥슨 성우 부당해고 사건 이후 수많은 기업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여성노동자를 표적으로 한 공격이 이루어졌습니다. 게임업계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다른 업계의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으로 번졌고, 기업과 공공기관은 논란을 피하겠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용하며 잘못된 선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이후 여성혐오 세력은 더욱 대담해졌고, 기업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여성혐오에 편승하거나 침묵하는 길을 선택해 왔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여성노동자의 SNS를 파헤쳐 공격하는 것을 넘어, 여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일터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마저 빼앗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가 발생한 고용노동부 인증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에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피해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입사 이후에도 여성혐오적 발언과 성차별적 괴롭힘이 이어졌습니다. 업무와는 무관하게 여성노동자의 신체를 평가하고 조롱하는 성희롱도 반복되었습니다. 직장에 적응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 할 중요한 시기에 피해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피해자는 존엄을 훼손당한 채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여성노동자의 신념을 검열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모욕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배제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기반한 차별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으며, 노동관계법은 사업주에게 고객 등 제3자의 폭언과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법과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조차 혐오와 차별 앞에 방치되고 있으며, 프리랜서와 하청노동자들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콘텐츠 업계를 비롯한 한국 기업에서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조직문화처럼 자리 잡아 왔습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일부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과 혐오 선동에 굴복하거나 이를 사실상 방조해 왔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노동권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자를 배제하거나 작업물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어왔고, 그 결과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더욱 반복되고 확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검열해야 하는 현실로 내몰렸고, 혐오와 차별은 일터의 문화로 고착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해 무수한 피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정부 역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왔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조사, 시정은 부족했고,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 개선 없이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멈출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제기한 이 진정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20년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관련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일입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노동자의 존엄과 평등권을 지키는 기관인지, 아니면 혐오와 차별 앞에서도 침묵하는 기관인지는 이번 진정으로 확인될 것입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노동권에 대한 공격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채용에서 사상검증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신념을 숨겨야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닌 노동자가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 그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입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차별받으며 혼자 싸우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다할 때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기구로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우리는 계속 요구하고, 연대하며, 끝까지 싸워 나가겠습니다.
[기자회견문]
일터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여성노동자의 일과 삶을 공격하는 이른바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게임업계를 넘어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일상적인 일터까지 여성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검열당하고 혐오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사건은 고용노동부 인증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에서 채용면접 단계부터 피해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문제 삼는 이른바 ‘사상검증’이 이루어졌다. 입사 이후에도 여성혐오적 편견과 성차별적 발언이 반복되었으며, 결국 피해자가 존엄을 훼손당한 채 일터를 떠나게 되었다. 이는 여성노동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검열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배제를 가한 성차별적 괴롭힘이자 성희롱이며, 성별과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20년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직업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러한 혐오와 배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이 세운 그 원칙을 이번 사건에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인권위원회가 인권이라는 원칙을 적용해야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인권위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원칙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혐오세력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진정에 대한 판단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여성노동자의 존엄과 평등권을 지키는 국가인권기구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할 것인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에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피진정인의 행위가 성차별적 괴롭힘이자 성희롱이며,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과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하라.
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성희롱·성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한 실효성 있는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하라.
셋.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지정·심사 기준에 성평등 규정, 성희롱 예방체계, 인권교육 이수 여부를 포함하고, 위반 기관에 대한 실질적 제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라.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검증당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존엄을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걸맞은 판단과 권고로 응답하길 촉구하며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
2026.7.15.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
한국 사회에서 여성노동자는 일터에서 자신의 역량이 아니라 사상과 신념을 검증받고, 성평등을 이야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욕과 차별을 감내해 왔습니다. 이러한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한 피해는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노동자가 홀로 견디거나, 개인의 예민함 혹은 사소한 갈등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구조적인 차별과 혐오로 고통받는 여성노동자들의 곁에 서기 위해,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기자회견은 한 명의 피해자를 위한 자리임과 동시에, 일터에서 반복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이 명백한 차별이자 인권침해임을 사회에 알리고 국가인권위원회의 책임 있는 판단을 촉구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현재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피해자를 지원하며 함께 사건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끝까지 홀로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용기가 또 다른 피해자의 침묵을 깨는 시작이 되고,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존엄을 의심받지 않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가 이어져야 합니다. 이 기자회견 후기가 더 많은 분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피해자의 곁에 함께 서는 작은 연대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래에 기자회견문과 기자회견 발언 전문을 공유드립니다.
1. 당사자 발언
안녕하세요, 저는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인 한 학원에서 근무하다 성차별과 성희롱 등 괴롭힘을 경험하고, 결국 해당 회사를 떠나게 된 김oo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또는 단지 저 개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어떤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비영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는 폭력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듣게 되는 말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하고, 성폭력 피해를 의심하거나 조롱하는 듯한 말을 하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섞인 편견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직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겪은 일을 사회가 함께 들여다보고, 앞으로는 누구도 직장에서 이런 일을 겪고도 '내가 문제가 있나?' 하며 자신을 탓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채용 면접을 보는 순간부터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까지,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대표의 반복적인 모욕과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습니다.
면접 때부터 사상 검증은 시작되었습니다.
대표는 면접 자리에서 제게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고 물었고, 이후에도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가 담긴 발언을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대표는 전 팀장이 동석한 회식 자리에서 어떤 피해를 경험했냐고 묻고선 숨길 이유도 없어 이야기해주자 웃으며 "왜 너를..?"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저를 대표실로 불러 인터넷에 '오.타.쿠' 세 글자를 검색한 뒤 제 외모를 만화 캐릭터와 비교하며 "거울 좀 봐.", "머리도 그렇고, 안경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풍채도 그렇고..", "주말에 아울렛이라도 가서 옷도 좀 사고 그래~ 여기 주변에 싼 데 많아~"라고 말했습니다.
냄새가 나니 병원에 다녀오란 말에 내과까지 다녀왔습니다.
대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모욕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이것도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지만요.
그 학원에서 고작 한 달을 일하고 난 뒤 저는 끊임없이 제 자신을 검열하게 됐습니다.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정말 문제인가?'. 주변 사람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가 알던 민지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해서 괴로움이 끝나는 건 아니었습니다.
친척이 소개해 주신 일자리라 그동안 했던 일들을 큰맘 먹고 정리하고 들어간 곳이었으나, 또 다시 생계를 잃은 후에는 다시 생계를 세워야 한다는 데에 대한 불안, 압박감, 무너진 자존감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한 달간 겪었던 일들로 인해 꽤 긴 시간 자괴감에 괴로워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부터 온갖 여성 혐오적인 발언, 인신공격까지. 참고, 참고 또 버텨왔지만, 그만두고 나서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 밀려오더군요. 뒤늦게 대응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사업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이었고, 현행법상 직장 내 괴롭힘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든요.
궁극적으로 저는 더 이상 이러한 문제를 개인이 참고 견뎌야 하는 일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참고 버티는 것이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나 존엄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 행동들은 분명 잘못되었다고요.
저는 오랫동안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을 저 자신이 아니라 사회에 던지고 싶습니다.
왜 직장에서 사람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되어야 하는지, 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의심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처음 대표와 면접을 봤을 때, 대표는 물었습니다.
"페미니스트야?"
그래서 전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페미니즘을 지향은 하나 지금껏 저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터넷에 페미니스트를 검색해보니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하더군요.
그럼 전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습니다. 저는 페미니스트가 맞습니다.
더불어 사직서를 제출할 당시, 대표는 말했습니다. 제 삶이 정상적이진 않다고.
네, 누군가의 눈에 저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습니다. 어떤 이처럼 세련된 정장을 입고 회사에 9 to 6 출근하지 않습니다.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습니다. 돈 안 되는 비영리 활동하느라 따로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그런데요. 제가 이렇게 사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건 당신과 다른 거고 정상이 아닌 게 아니에요. 내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검증당하거나 모욕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누구도 남들이 택하지 않는 험한 길을 간다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폄하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앞서 말한 것들과 같은 이유로 누구도 자신의 존엄을 의심하게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최근 이화여자대학교 NGO 여성 활동가 리더십 과정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분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질문 시간에 한 활동가가 질문을 하자 그분은 "진정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을 진정하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진 말씀은 달랐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 문제에 대한 세상의 태도가 바뀐다는 뜻, 즉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이 자리에도 섰습니다.
오늘의 진정이 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슷한 일을 겪고도 말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법률대리인 발언 - 강미솔 (희망을만드는법)
안녕하십니까. 저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과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강미솔 변호사입니다. 김두나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 진정의 대리인을 맡고 있습니다.
2016년경 게임 및 콘텐츠 업계에서 페미니즘 사상검증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래로 일터를 비롯한 생활영역 전반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거나 관련 글을 공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용 또는 계약 관계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 역시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이 사건 피해는 채용 면접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피진정인은 면접 자리에서 진정인에게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고 질문하였고, “페미니즘이고 여성운동이고 존중하는데 난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는 싫어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직무와 전혀 관계없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편견을 드러내는 여성 혐오 발언입니다. 피진정인의 행위는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과 성별을 이유로 고용 영역에서 진정인을 불리하게 대우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합니다.
나아가 피진정인은 대표이자 진정인의 직속 상사로서 진정인의 인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진정인을 대상으로 부적절한 성적 언동을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피진정인은 여성의 성매매, 성범죄 등에 관한 성차별적 발언과 진정인의 이성교제 여부, 성적 지향, 혼인관 등 내밀한 사적 영역에 대한 질문을 하였고, 여성의 외모와 신체에 대한 성적 고정관념에 기반하여 진정인의 신체를 성적 시선으로 대상화하여 평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언동은 평균적인 여성 노동자의 관점에서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것으로서 명백한 성희롱에 해당합니다.
더욱이 피진정인이 운영하는 기관은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입니다. 이러한 기관의 종사자들에게는 일반 사업장에 비하여 더욱 높은 수준의 인권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이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피진정인은 진정인에 대하여 여성혐오적, 성차별적 발언, 직장 내 성희롱을 반복적으로 하여 진정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적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습니다.
저희는 이번 진정을 통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피진정인의 행위가 차별행위 및 성희롱에 해당함을 확인하고, 나아가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 지정과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하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진정인은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용기가 단지 한 사람의 피해 회복에 그치지 않고, 같은 피해를 겪고 있는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적 변화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3.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발언 - 노헬레나 (대독: 배진경)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책위원회/한국여성노동자회)
2016년 넥슨 성우 부당해고 사건 이후 수많은 기업에서 일어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우리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성평등을 이야기했다는 것을 근거로 삼아 여성노동자를 표적으로 한 공격이 이루어졌습니다. 게임업계에서 시작된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다른 업계의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으로 번졌고, 기업과 공공기관은 논란을 피하겠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용하며 잘못된 선례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 이후 여성혐오 세력은 더욱 대담해졌고, 기업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여성혐오에 편승하거나 침묵하는 길을 선택해 왔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여성노동자의 SNS를 파헤쳐 공격하는 것을 넘어, 여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일터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마저 빼앗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한 진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가 발생한 고용노동부 인증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에서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피해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입사 이후에도 여성혐오적 발언과 성차별적 괴롭힘이 이어졌습니다. 업무와는 무관하게 여성노동자의 신체를 평가하고 조롱하는 성희롱도 반복되었습니다. 직장에 적응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 할 중요한 시기에 피해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피해자는 존엄을 훼손당한 채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여성노동자의 신념을 검열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모욕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배제하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기반한 차별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차별을 명백히 금지하고 있으며, 노동관계법은 사업주에게 고객 등 제3자의 폭언과 괴롭힘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법과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노동자들조차 혐오와 차별 앞에 방치되고 있으며, 프리랜서와 하청노동자들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화콘텐츠 업계를 비롯한 한국 기업에서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조직문화처럼 자리 잡아 왔습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일부 이용자들의 사이버불링과 혐오 선동에 굴복하거나 이를 사실상 방조해 왔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노동권을 보장하는 대신 노동자를 배제하거나 작업물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덮어왔고, 그 결과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더욱 반복되고 확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여성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표현을 검열해야 하는 현실로 내몰렸고, 혐오와 차별은 일터의 문화로 고착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으로 인해 무수한 피해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정부 역시 책임을 다하지 못해 왔습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조사, 시정은 부족했고, 여성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 개선 없이는 페미니즘 사상검증을 멈출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가 제기한 이 진정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20년 페미니즘을 지지하거나 관련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는 일입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노동자의 존엄과 평등권을 지키는 기관인지, 아니면 혐오와 차별 앞에서도 침묵하는 기관인지는 이번 진정으로 확인될 것입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노동권에 대한 공격이며,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채용에서 사상검증을 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신념을 숨겨야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닌 노동자가 자신의 신념을 숨기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 그것이 우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민주주의입니다.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차별받으며 혼자 싸우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할 것입니다. 기업과 정부가 책임을 다할 때까지,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기구로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때까지, 우리는 계속 요구하고, 연대하며, 끝까지 싸워 나가겠습니다.
[기자회견문]
일터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 국가인권위원회가 나서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여성노동자의 일과 삶을 공격하는 이른바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게임업계를 넘어 공공기관과 교육기관, 일상적인 일터까지 여성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검열당하고 혐오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오늘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는 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이 사건은 고용노동부 인증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에서 채용면접 단계부터 피해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문제 삼는 이른바 ‘사상검증’이 이루어졌다. 입사 이후에도 여성혐오적 편견과 성차별적 발언이 반복되었으며, 결국 피해자가 존엄을 훼손당한 채 일터를 떠나게 되었다. 이는 여성노동자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검열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욕과 배제를 가한 성차별적 괴롭힘이자 성희롱이며, 성별과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20년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직업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러한 혐오와 배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이 세운 그 원칙을 이번 사건에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인권위원회가 인권이라는 원칙을 적용해야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인권위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권의 원칙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혐오세력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이번 진정에 대한 판단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여성노동자의 존엄과 평등권을 지키는 국가인권기구로서 최소한의 책임을 다할 것인지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이에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피진정인의 행위가 성차별적 괴롭힘이자 성희롱이며,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과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하라.
둘.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성희롱·성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한 실효성 있는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하라.
셋.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지정·심사 기준에 성평등 규정, 성희롱 예방체계, 인권교육 이수 여부를 포함하고, 위반 기관에 대한 실질적 제재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라.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검증당해서는 안 된다.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존엄을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존재 이유에 걸맞은 판단과 권고로 응답하길 촉구하며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할 때까지 끝까지 싸워 나갈 것이다.
2026.7.15.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