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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0.29 국제돌봄의날 기념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2025 돌봄행진>

2025-11-04
조회수 46



[후기]

10.29 국제돌봄의날 기념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2025 돌봄행진>



2025년 11월 1일,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2025 돌봄행진’이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열렸습니다. 10.29 국제 돌봄의 날은 2023년 UN 총회 결의안을 통해 매년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로 선포되었고, 결의안은 돌봄의 공공성, 돌봄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명시하며 돌봄이 개인과 가족의 몫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에서는 작년 10.29 국제돌봄의 날 조직위가 꾸려져 첫 행사와 집회를 치루었고, 올해 두번째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번 행사는 한국여성노동자회를 비롯한 20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주최했습니다. 집회에서는 누구나 돌보고 돌봄을 받을 수 있으며, 돌봄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돌봄 받을 권리, △돌볼 권리, 그리고 △돌봄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헌법에 돌봄권을 명시하고 돌봄기본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였고, 한국여성노동자회의 노헬레나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아 행사를 이끌었습니다.



“누구나 돌보고 돌봄을 받을 권리”를 헌법에 명시하자는 요구 아래, 다양한 위치와 환경에 놓인 이들의 발언을 통해 돌봄중심사회로의 전환이 어떤 의미인지를 되새길 수 있는 집회였습니다. 이어진 행진은 돌봄이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토대임을 확인하며 성평등한 돌봄사회 구축,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돌봄노동자 고용안정 처우개선 보장과 돌볼 여유를 위한 사회적 돌봄 환경 개선하라는 요구들을 외치며 시민들에게 돌봄의 중요성을 알려냈습니다.


돌봄 민주주의는 여성, 소수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과 존엄의 문제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던 만큼, 이날 보신각을 가득 채운 구호처럼, “돌봄의 국가책임 강화하고 모두의 돌봄권 보장하라!”는 외침은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또렷이 비춰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담긴 집회 발언문 전문을 공유합니다.


[10.29 국제돌봄의날 조직위원회 요구안]

○ 총적과제

헌법에 돌봄권 명시, 돌봄기본법 제정, 돌봄 민주주의 확립,

성평등한 돌봄 사회 구축, 돌봄 공공성 강화로

돌봄 중심 사회로 전환 하자


○ 3대 요구 9대 과제

돌봄 받을 권리 보장

- 국가와 지자체가 책임지는 통합돌봄 시행

- 기본공급률제 시행 (돌봄 국공립 시설 30% 이상)으로 공공 돌봄체계 강화

- 소외 없이 촘촘한 모두의 돌봄권 보장

돌볼 권리 보장

- 스스로 돌볼 권리 보장 (유급병가, 상병수당 가족돌봄휴가제도 확대 등)

- 돌볼 여유를 위한 사회적 돌봄 환경개선

- 다양한 가족구성권 보장

돌봄 노동자 권리 보장

- 안전하고 평등한 노동환경 조성

- 적정임금, 고용안정 보장, 처우개선

- 돌봄 정책 결정 과정에 돌봄노동자 참여 보장




[발언 1.] 돌봄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 백미순 참여연대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참여연대 공동대표 백미순입니다.

요즈음 모임 자리에서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논의하는 주제는 돌봄의 문제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돌봄을 어떻게 감당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에게 이것이 현실적 상황으로 다가오면서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종국에는 멀지 않은 시기에 닥칠 우리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이어집니다. 혹은 손주 돌봄의 문제도 있습니다. 집안에 아기가 태어날 경우 그 자체로서 기쁨이지만 아이 돌봄의 상황을 어떻게 책임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가 집안의 가장 큰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면 돌봄의 문제는 인생의 한 시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상존했던 문제입니다. 인간이 누군가의 돌봄 없이 생존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은 삶의 전 과정에서 돌봄을 받고 돌보는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돌봄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전 지구적으로, 모든 사람이 갖는 보편적 경험이자 의무이자 책무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돌봄의 보편성은 우리에게 왜 돌봄의 가치, 돌봄의 문제가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것인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인간의 삶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한 인간사회는 돌봄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모든 사회구성원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합리적인 행위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시민의 성장과 존재는 언제나 적절한 돌봄을 받고 돌보는 돌봄 관계 속에서 존재합니다. 특정한 사람들만이 돌봄을 필요로 한다는, 그리하여 돌봄은 부차적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다시 강조하자면 인간의 삶과 사회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데 필수적인 돌봄의 조건이 갖춰지지지 않는다면 개인의 자유와 평등, 공동체적 가치와 좋은 삶은 존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돌봄 의존성과 공동체 유지와 존속을 위한 돌봄의 필수성은 돌봄이 개인을 넘어선 사회 전체의 집단적인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돌봄에 대한 공적 책임을 정부가 담당해야 하며 국가가 돌봄 불평등을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점 역시 명백해집니다. 돌봄은 사적인 차원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적차원의 문제이며,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과제입니다.


헌법 개정 시 돌봄의 가치와 돌봄권을 포함해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돌봄이 공적 책임이자 공적 가치임을 정부의 기본 제도와 정책의 근본원리에 담기 위해서입니다. 돌봄의 가치가 헌법과 정부의 기본구조와 제도의 중심에 놓여야 합니다. 이재명 정부는 약속한 대로 돌봄문제를 주요 정책과제로 삼아야 하며, 돌봄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정치적 공론장에서 해나가야 할 때입니다.


돌봄사회로의 전환과 돌봄의 공적 책임의 제도화, 돌봄 책임의 공정한 분배가 가져올 변화는 매우 근본적입니다. 한국사회를 돌봄정의의 차원에서 구조를 전환해야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산적한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완화하고 성평등사회로의 실현, 다양한 가족구성권 인정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이는 허약한 우리의 민주주의 토대를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돌봄에 내재한 인간 상호 간의 필요에 대한 민감성과 관계의 가치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비폭력의 길을 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돌봄 사회로의 전환은 민주주의와 구조적 정의와 평화를 만들어 냅니다. 그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돌봄노동과 돌봄가치, 돌봄윤리에 더 많이 주목하면서 국가의 기본방향을 설정해 갑시다.


2023년 유엔은 10월 29일을 ‘국제 돌봄 및 지원의 날(International Day of Care and Support)’로 지정했습니다. 이미 국제사회는 돌봄사회로의 전환을 인류의 비전이자 긴급한 실천과제로 제시하면서 이에 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2025년 10월 29일 국제돌봄의날 기념주간을 마무리하며, 돌봄사회로의 전환, 돌봄의 공공성 강화, 돌봄 노동의 가치 인정, 그리고 돌봄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연대와 실천에 나설 것을 다짐하면서 말을 마치겠습니다.



[발언 2.] 조기현 돌봄커뮤니티 N인분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의 대표 조기현입니다. 여러분 ‘영케어러’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픈 가족이자 친지를 돌보는 아동, 청소년, 청년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들은 가족 돌봄의 부담으로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또래 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진로 이행이나 자립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돌봄, 진로이행, 생계의 삼중의 과제를 수행하며 간신히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2년 정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에 영케어러는 약 10만명으로 추정됩니다. 돌봄 커뮤니티 N인분은 그런 영케어러들과 시민들이 돌봄을 혼자 짊어지지 않도록 돌봄을 N인분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입니다.


저는 스무살 때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영케어러가 되었습니다. 이후 아무런 공적 지원 없이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고 일하고 병원에 다니길 반복했습니다. 아버지도, 저도 외딴섬에 고립된 것처럼 지냈습니다. 언제까지 이 삶이 계속될지 두려웠습니다. 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을까요? 아버지가 아프지만 아직 젊다고, 저도 이제 성인이라고, 둘 다 근로가능 상태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취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돌봄이 기본적인 권리로 보장되지 않은 사회의 결과였습니다.


2022년 정부의 실태조사에는 영케어러들이 겪는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등의 중증질환과 정신질환이 있는 가족이나 친지를 돌보는 영케어러들은 공적 돌봄을 받은 경험이 타 질환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중증질환이나 정신질환이 있는 경우 신청할 수 있는 공적 돌봄서비스가 부재했고, 바로 그 사각지대에서 영케어러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돌봄이 필요한 존재를 아이, 장애인, 노인 등으로 제한적으로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가 언제든 취약한 존재라고, 그렇기에 모두를 위한 보편적 돌봄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야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돌보는 사람도 서로에게 갇혀버린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내년 3월이면 지역사회에서 돌봄을 받는 통합돌봄이 시행됩니다. 이를 앞두고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가 입법 예고한 돌봄통합지원법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안에서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 문구를 보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통합지원 대상자의 범위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이들의 돌봄 요구를 반영하라는 요구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당장에 내년 3월부터는 누구나 돌봄이 필요할 때 받을 수 있는 전환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영케어러의 이야기를 드렸지만, 영케어러는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새로운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영케어러가 돌봄 부담으로 휘청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기존의 돌봄에 대한 저평가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기존에 가정 내에서 돌봄을 아내에게, 며느리에게, 딸들에게 무급으로 맡기며 아무런 사회적 인정이나 보상이 없던 것,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돌봄의 불평등이 가족 규모가 축소되면서 아동, 청소년, 청년에게도 상속된 것에 가깝습니다.


만약 돌봄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고 보상 받았다면 영케어러들이 돌봄을 했다는 이유로 사회를 진입하지 못하고 고립되고 돌봄을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돌봄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취약해도 괜찮은, 안전한 세상을 만들 뿐 아니라, 누가 돌봄을 하더라도 괜찮은 세상을 만듭니다. 우리 모두가 그런 세상에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 함께 합시다.



[발언 3.] 백선영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기획국장

 

반갑습니다. 저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백선영 활동가라고 하구요. 장애아동의 엄마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인생동안 평생의 화두였던 ‘돌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중도의 발달장애가 있는 제 아이는 평생에 걸쳐 다양한 영역에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이를 낳고 제가 맞닥뜨려야 하는 모든 의무와 노동의 실체를 저는 잘 감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왜 이것까지 해야 하지, 내가 왜 아이가 부딪히는 장벽들을 감수해야 하지, 내가 왜 낙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온 몸으로 느껴야 하며, 내가 왜 아이가 겪는 차별들을 오롯이 느끼며 살아야 하지, 그러면서도 아이를 부양해야 할 책임까지 평생을 져야 하는 걸까. 때로는 인생이 저당잡힌 것 같았고 숨이 막혀와 잠 못 이룬 날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저는 ‘모성’에 의존한 각종 의무들을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돌봄’이 관계적, 정서적 지원과 조력을 중심으로 하여 타인의 생존을 유지하는 노동이라 정의한다면 저는 참 무지하고 소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아이가 가진 취약성이 너무 절대적으로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저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들을 운동으로 해 온 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내 삶도 이렇게만 바라보고 있을 수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애당사자운동을 근간으로 한 진보적 장애운동의 일부로써 부모운동을 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부모운동을 하면서는 지긋지긋했던 돌봄을 조금은 다른 시각에서 보게 됐어요

 

‘장애인을 돌보다’라는 말은 맞는 말일까요. 돌봄이라는 말 안에 담겨 있는 위계, 돌봄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던 통제, 심지어 폭력과 학대까지. 국제사회에서는 시설 수용의 오랜 폐해로 즉각적인 탈시설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시설 중심의 돌봄이 시설에 갇힌 대상들을 양산합니다. 가족이 확인되지 않는 장애인·노인·영유아들은 개별성이 존중되지 않는 집단적 수용 속에서 그저 관리 대상으로만 전락합니다. 저는 절대적으로만 여겨졌던 그 ‘취약성’에 대해 재사유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통상 취약하다 여겨지는, 돌보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이 지독한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 갖은 애를 써야 합니다. 그 나름의 개개인의 위치에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결코 취약하다 말할 수 없을 이들을 취약하다고 일반화하여 돌봄 사회의 이상향을 단지 취약자를 돌보자는 말로만 설명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좋은 돌봄은, 좋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좋은 관계는 돌봄을 주고 받는 사이의 평등한 관계입니다. 취약성에 대한 보호는 사람의 모든 초점을 약점으로만 가 닿게 합니다. 그러면 평등한 관계 맺기가 힘들어져요. 삶의 주도성이 있는 온전한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조력들은 무엇일지, 여기 모인 우리들은 꼭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돌봄의 공공성, 돌봄노동자의 노동권, 돌봄의 젠더화 등 돌봄에서 논의되는 여러 의제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거기에 저는 이 말을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돌봄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잘 조직된 돌봄을 통해 내가 주체로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요. 취약성을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분별하여 구조를 바꿔내는 운동, 작은 사안 하나라도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져보는 경험, 존엄하고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를 끝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돌봄. 우리가 그려가는 돌봄의 상이었으면 합니다. 오늘, 더 많은 이야기와 호소와 투쟁과 당찬 행진이 오가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발언 4.] 이광호 펭귄의 날갯짓 공동대표

 

안녕하세요. 정신질환과 고립을 경험한 당사자들로 구성된 단체 ‘펭귄의 날갯짓’ 공동대표 이광호입니다. 저희는 경기도 수원에서 동료지원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동료지원쉼터는 정신질환 회복을 경험한 정신질환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정신질환자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정신건강 영역에서 발생하는 돌봄과 지원의 한계를 매일 마주합니다. 우선 우리 사회에서 정신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접근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나 적습니다. 사실상 병원 진료를 받는 것이 거의 유일한 선택지에 가깝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한 회에 10만 원 가량 하는 비용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심리상담에는 법적 자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상담소를 개설할 수 있는 상황인데, 이렇다보니 정신질환 당사자들은 상담소에서 또 다른 상처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상담소는 대기가 밀려 오랜 기간 기다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심리적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증상이 악화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는 최근에 어떻게 지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자살 사고는 없는지 등을 묻고 약물을 처방합니다. 약이 잘 맞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수면에 문제가 생기거나, 살이 찌거나, 자살 사고가 높아지거나, 우울감이 증가하거나, 다리가 떨리거나, 침을 흘리게 되는 등 다양한 문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는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안 되는 듯한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우울감, 불안감, 환청, 망상 등 흔히 ‘비정상’이라고 여겨지는 증상을 제거하기 위해 처방 받은 증상 감소에 효과가 있습니다. 저 또한 약물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 당사자의 삶은 증상만으로 이루어져있지 않습니다. 당사자에게 회복이란 증상을 제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회에서 함께 일하고, 관계를 맺고,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것들이 이루어질 때 회복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정신건강 영역의 돌봄과 지원은 여전히 증상 제거와 상담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 주거 지원 등의 일부 시범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그 수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돌봄과 지원 중심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우선 노동 강도와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정신장애인 2024년 하반기 정신장애인 고용율은 약 10%로 전체 장애인 고용률인 34.5%에 비해서도 훨씬 낮습니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언제든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데 우리 사회의 노동환경은 필요할 때 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에 눈치를 보면서도 무리를 할 수밖에 없고, 증상이 악화되어 퇴사하게 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취직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도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병수당이 도입되어야 합니다. 정신질환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픈 사람이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아프지만 눈치가 보여서, 생계를 유지할 돈 때문에 무리하면서 일을 하는 사회를 바꿔야 합니다. 또한 충분한 인력을 채용할 수 있도록 예산이 지원되어야 합니다. 상병수당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인력 부족으로 마음 놓고 쉴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제도를 도입하는 취지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제도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돌봄과 지원 노동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해야 합니다. 동료지원인들은 매번 ‘전문가가 아니다’라거나, ‘환자가 어떻게 다른 환자를 지원할 수 있느냐’는 의심 섞인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동료지원인들이 지식의 양은 적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서적인 어려움과 회복의 시기를 지나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경험의 전문가입니다. 공감과 이해 그리고 평등한 관계를 통한 회복은 동료지원인들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입니다. 이처럼 돌봄과 지원 노동은 쉽게 대체 가능한 일자리가 아닌, 숙련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부동산, 주식 등 불로소득에 부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반면 돌봄과 같은 필수적 노동에 대한 가치는 여전히 홀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과감히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돌봄에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사회가 되었을 때 우리는 단순히 돌봄과 지원을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자에 그치지 않고 권리의 주체로 자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구호 외치고 내려가겠습니다.

돌봄 여유를 위한 사회적 돌봄 환경 개선하라!

 




[발언 5.]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사무처장

 

한국에는 돌봄 분야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방문취업(H2), 거주(F2), 재외동포(F4), 영주(F5), 결혼이민(F6)비자 등을 가진 이주여성들이 돌봄, 요양, 가사 등 다양한 돌봄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임금차별, 임금체불, 부당하고 과도한 업무요구, 휴게시간 없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이에 더해 성희롱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돌봄 분야의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 없이 서울시와 고용노동부는 저출생, 경력단절 해소를 이유로 2024년 8월에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 진행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100명의 필리핀 이주여성 노동자가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임금 체불, 과도한 업무요구, 인권침해 등을 경험하였습니다. 시부모 집의 청소, 반려동물 돌보기, 영유아와 부모를 대상으로 영어 교육 등 계약과 상관없는 부당한 업무를 지시받았습니다. 기숙사 통금시간, CCTV를 통한 동선 감시, 노동자 간 SNS 소통내용이 업체에 보고되는 등 인권침해를 경험하였고, 3개월, 6개월, 1년 등 쪼개기 계약으로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 고용업체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에게 불이익 주거나 계약과 비자로 위협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부당한 업무지시에도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습니다.

 

특히 고용허가제(E-9)를 통해 입국한 필리핀 이주여성 노동자의 경우 고용과 체류가 연동되어 있으며, 사업장 변경 제한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업장을 이탈하게 되면 미등록 체류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고용허가제는 강제노동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부터 사업장 변경 제한에 ‘지역 제한’까지 더해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은 일정한 권역 내에서만 사업장을 변경하도록 제한되어 있습니다. 정부는 성폭력 피해 이주여성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도를 일부 개선했지만,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고, 한국의 법과 제도를 잘 알지 못하는 이주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고 지원을 받는 것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여성 노동자에 대한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 성폭력 상담통계를 살펴보면 2022년 522건, 2024년 844건으로 60%이상 증가하였습니다. 그러나 젠더기반 폭력피해 이주여성을 위한 이주여성상담소는 전국에 10곳에 불과합니다. 서울시의 위탁으로 운영되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는 2013년에 개소 이후 10년 넘게 운영되고 있지만 서울시의 예산축소로 인해 피해자 지원과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서울시와 정부는 이제 더 이상 이주여성 노동자를 ‘저임금 대체노동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이주여성 노동자는 돌봄의 주체이자 한국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며 시민입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돌봄정책을 “저임금의 이주여성 노동자” 라는 차별 프레임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성평등한 돌봄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1. 돌봄분야 이주여성 노동자의 인권침해, 노동권 침해, 젠더기반 폭력피해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하라

2. 젠더기반 폭력피해 이주여성 노동자를 위한 안전한 지원체계를 확대하라

3. 고용허가제(E-9)의 사업장 변경 제한을 폐지하고, 불안한 체류제도를 개선하라

4.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No. 189) 비준하라.


[발언 6.] 최영미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안녕하십니까 한국노총 가사`돌봄유니온 위원장 최영미입니다. 마음을 모아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지난 해 추운 겨울날 광화문 광장에서 두 번째 촛불을 켜들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겯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나라의 주인은 우리 국민임을 천명하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 발걸음을 뗄 때입니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돌봄민주주의의 길입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정의로운 돌봄을 만드는 길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가정에서 무급 돌봄노동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가치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다가 사회로 나오면 나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실업자이고 나이 든 아줌마일 뿐입니다.

코로나를 계기로 정부와 언론은 말합니다. 돌봄은 필수재이고 돌봄노동자들은 필수노동자라고. 하지만 립서비스일 뿐, 여전히 우리는 최저임금 노동자이고 아줌마입니다. 집에 가서는 사회적으로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노동에 종사하고 밖에 나와서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노동에 종사합니다.

아무도 내게 나를 돌볼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이며 연차휴가 확대는 우리에게 남의 나라 일입니다. 나도 쉬고 싶다,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외침은 입 안에서 맴돌 뿐입니다.

 

그래서 유엔은 각국 정부에 말합니다.

가정의 무급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해라!

사회의 유급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적정임금과 사회적 보호를 확대해라!!

돌봄이 여성뿐 아니라 남녀 모두가 선택할 수 있는 떳떳한 직업이 될 수 있도록 경계를 허물어라!!

공공서비스를 확대하고 돌봄에 적극 투자하라!!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헌법에 돌봄권을 넣고 돌봄기본법을 만들겠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국회에서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 돌봄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잇달아 발의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그리고 최근에도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 재정을 집어삼키고 정책을 좌지우지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 말 역시 립서비스에 그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종로바닥에서 우리는 외칩시다.

 

돌봄은 전국민의 권리이다, 헌법에 돌봄권 포함하라!!

누구나 차별 없이 돌봄을 받고 돌봄노동을 해야 한다, 돌봄기본법 제정하라!!

돌봄의 주인은 국민이다, 소수가 모여 정책을 만들지 말고 일하는 사람의 대표권 인정하라!

 

우리는 모두가 돌봄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돌봄 이용자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한민국의 국민, 대한민국의 주인입니다.

단결합시다! 연대합시다!

우리와 우리의 부모, 자녀, 친구를 위해 나아갑시다. 돌봄 민주주의, 정의로운 돌봄이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그 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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