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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2026년 YH무역 김경숙 열사 제47차 추모제

2026-08-25
조회수 99

작성자: 서울여성노동자회  해송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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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기온이 35도를 웃돌던 2026년 8월 11일, 김경숙 열사 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1979년 8월 11일은 YH무역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여성노동자를 착취하던 회사에 맞서 싸우고, 이를 비호하던 국가 폭력에 맞서다 돌아가신 김경숙 열사의 기일입니다. 어느덧 47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김경숙 열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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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 시작 전, 먼저 떠나보낸 동지의 잔을 채워주는 모습에 여러 생각과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영정사진 속 김경숙 열사의 앳된 모습과 당시 불의에 맞서 함께 싸우고 '경숙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47년의 세월을 버티고 살아낸 동지가 마주한 장면에 울컥 눈물이 솟았습니다. 추모식에 함께한 참가자 모두가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97c675467204c.jpeg추모제 사회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박선영 활동가가 맡았습니다. 시작부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는 말 중
김경숙 열사와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소외 받던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지키고, 정당한 노동의 권리를 찾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 싸운 역사였습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며 새로운 위협을 가해오는 오늘날, 생존권과 노동의 존엄성을 외쳤던 열사의 투쟁은 우리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시대를 뛰어넘어 열사의 정신을 되새기고 계승하는 이 자리가 지금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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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는 함께 추모 영상을 보았습니다. 매년 추모제에 참가하는 이들에게는 일상을 지내느라 잠시 잊었던 마음이, 처음 영상을 보는 이들에게는 뜨거운 마음이 올라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김경숙 열사가 일하며 보람을 느끼는 모습,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사회의 부조리와 노동권에 눈 뜨고 여성노동운동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도 담겨 있었습니다. 영상 속에서 투쟁하는 이들 다수가 아직 어리고 앳된 모습이었습니다. 맨 앞줄에 자리한 선배들이 저 영상 속에 계신 분들이라는 것에 새삼 이 자리에 함께하여 영광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YH노동조합의 투쟁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수많은 열사, 이름도 없이 산화한 많은 분들을 추모하는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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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 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묵념이 끝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습니다. 먼저 떠난 동지들을 생각하며 우렁차게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85313f79d073f.png여성노동자회에는 전통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김경숙 열사 추모제에서 약력과 추모시 낭독은 신입활동가가 맡는 것입니다. 이번 추모제에서는 서울여성노동자회 해송 활동가가 김경숙 열사의 약력을 소개했습니다.


1958. 6. 5 전라도 광산군 비야면에서 어머니 최영자 님과 아버지 김용귀 님의 장녀로 출생
1971. 국교 6학년 겨울방학을 계기로 광주에 있는 누에고치 공장에서 노동자로 출발
1973. 서울로 상경, 양동에 있는 하청 제품공장, 한품섬유, 태진산업, 이천물산 등 전전하며 봉제공장 미싱사로 노동
1976. 8. 30 YH무역(주) 입사
1977. 6 YH 노동조합에서 설립한 녹지야학 입학
1978. 3 YH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선출
1978. 7 YH 노동조합 소그룹 '차돌이' 그룹장으로 활약
1979. 3. 30 YH무역의 일방적 폐업 공고 발표로 YH 사건 시발
4. 13 YH 노조 폐업 철회 공장 점거 농성. 5일 동안 (폐업 1차 철회함) 김경숙 동지 후생부 책임 당담으로 활약
7. 25 회사 정상화를 위한 노조 대의원대회 때 <회사 정상화 추진위원 56명 구성> 중 김경숙도 위원으로 활약
8. 9 신민당 당사 점거농성 시작
8. 11 새벽 2시 2천여 명의 경찰이 ‘101호 작전’에 의해 신민당사에 난입하여,
조합원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김경숙 사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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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추도사는 당시 YH무역 노조위원장이었던 최순영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공동대표께서 해주셨습니다. 이날 추도사 중 "왜 여성노동자는 죽어서도 차별을 받는가"라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전 국민이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름이 알려진 전태일 열사에 비해 김경숙 열사는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고 하시며 "누구의 죽음은 귀하고, 누구의 죽음은 안 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여전한 여성 차별에 대해 꼬집어주셨습니다. 추모 영상에서 나온 김경숙 열사가 기숙사에서 찍은 사진을 언급하시며, 전태일의료센터가 건립된 터는 과거 YH무역이 있던 자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자, 다들 몰랐던 사실이라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YH 투쟁의 역사적 의의를 짚어주셨습니다. '우리는 회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을 알았다. 복직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투쟁해야 했다'고 하시며, 당시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YH무역 노동자들의 투쟁은 '죽음을 각오한 300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의 용감한 투쟁이었고, 김경숙 열사의 죽음이 국민의 공분을 일으켜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결국 10.26 발발로 유신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사회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김경숙 열사를 기억하며 계속해서 여성노동자들이 차별 받는 노동 현장을 바꾸어내야 한다며, 여성노동자회가 힘을 모아 이 역사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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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당시 콘트롤데이터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활동하신 한명희 선배님(서울여성노동자회 이사)께서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도사를 해주셨습니다.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김경숙 열사 추모행사도 열 수 없던 상황에서, '김경숙 열사 추모 재단'을 만들 것인지, '한국여성노동자회'라는 이름으로 여성노동단체를 세울 것인지, 치열한 논의가 이어졌던 기억을 떠올리셨습니다. 결국 한국여성노동자회를 설립해 활동하는 것이 김경숙 열사의 뜻을 기리는 일이라고 판단해 1987년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출범한 역사를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창립도, 김경숙 열사 추모제도 지하에서 은밀하게 병행했던 당시를 회상하시고는, 여성노동자회의 노력으로 김경숙 열사를 마석 모란공원 민주화 열사 묘역에 모실 수 있었다며, 47년 동안 매해 추모제를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말을 남겨주셨습니다.


민족민주열사추모연대 김갑수 부의장께서도 추도사를 남겨주셨습니다. 현재 김경숙 열사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등록되어있지만, 수년간 국회에 계류 중이던 '국가유공자법'이 현재 본회의 심의 중인만큼 이 법이 통과되어 유신반대투쟁, 6월민주항쟁 및 부마민주항쟁 등의 민주화운동의 주역들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불리지 않고 '국가유공자'로 불릴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는 말씀을 남겼습니다.

또 YH 야학 선생님으로 활동한 인연으로 매년 빠지지 않고 추모제에 자리해 주시는 주권자 전국회의 정해랑 공동대표께서도 추도사를 남겨주셨습니다. 당시 YH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활동을 했지만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배웠다는 정해랑 대표는, 특히 김경숙 열사의 사망 이후 본인의 삶이 많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또 후배 여성노동자들이 선배들의 투쟁을 기억하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도 함께 남겼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대표는 2027년 한국여성노동자회 창립 40주년을 앞두고, 여성노동자회의 명맥을 어떻게 더 잘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라는 말로 추도사를 열었습니다. 이날 자리해주신 많은 선배님들을 바라보며 여성노동자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선배님들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모든 분들의 건강을 기원했습니다. 앞으로도 여성노동자회는 선배 노동자들의 경험과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다짐 같은 이야기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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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지지 않는 빛 김 경 숙

(인천노동자문학회 시창작반 공동작품)


1

당신의 나이 스물 하나였다.

1979년 8월 11일

잊지못할 그 밤

고향의 따뜻한 뒷산 품에

아버지를 여의던 길도 아닌 곳으로

농성장 창틀을 부여잡고 울부짖던 동지들

잘가라 배웅도 받지 못한 채

그대 마지막 떠나던 날은.

 

소리도 챙챙한 쇠파이프로

경대를 죽이고 창수를 죽이고

미경이를 몰아 붙이던 쇠파이프에

날마다 눈을 뜨면

해맑은 누이들의 절규를 짖이겨 대며 조여오는

미쳐 번뜩이는 쇠파이프와 곤봉에


투쟁의 붉은 영혼 낭자하게 쏟아내고

그대 영영 어디로만 가고 있었는가 

 

2

고요한 새벽 공기를 찢는 공격의 신호소리

지쳐 잠이든 고귀한 동무들

놀라 아우성치는 피의 축제 ‘101호 작전’

짐승의 곤봉이 내 몸에 내리 꽂히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흘러 적시는 내 뜨거운 피

고막을 찢던 비명소리 아스라히 멀어지던

내 나이 스물 하나였어요.

 

3

어머니

날 묻지 마세요

날 태우지 마세요

한줌 재가된 뼈마디 가루로는

난 이 땅을 떠날 수 없어요

 

내 살아온 삶의 전부를 바친 이 노동의 끝

우리 처음 만난 곳은 YH라네

우리들이 단결한 곳도 YH라네

그리운 동무들의 이름 한 번 부르지 못하고

이렇게 묻힐 순 없어요

 

친구여

나를 아는, 그리고

나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여

나의 슬픔을

나의 분노를 함께 이고 갈

내 가난한 이웃들이여

삼일이 아니라면 십삼년

삼십년이라도 좋아요

신성한 인간의 노동이 유린되는 곳

그곳이 나의 집입니다.

그대 노엽고 슬픈 가슴에 날 품어주오.

 

4

다시 피어나는 구나

드높은 조국의 팔월 하늘

그토록 가고 싶던 고향하늘도

모진세월의 역사를 흘러 흘러

자유의 하얀 뭉게구름으로 피어나는 구나

슬픔으로 더욱 견고해진

우리들 가슴 가슴마다

피끓는 부활의 숨결

새 세상의 아침을 향해

눈부시게 피어나는 빛으로

그대 다시 우리 앞에 살아오는구나.




추모시 낭독은 부천여성노동자회 김두화 활동가가 맡았습니다. 이날 추모시 낭독을 위해 오랜 시간 연습했다는 것이 실감 나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졌고, 낭독을 하던 김두화 활동가도 눈물을 흘리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김경숙 열사를 추모했습니다.

8602ede467b70.jpeg김경숙 열사의 유가족이신 조카 김형은 님도 참석해주셨습니다. 유가족으로써 고모를 기억하고 매년 추모제를 열어주는 것에 감사하고 위로를 받는다는 말을 전하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어린 시절 마석 모란공원 묘역에서 열린 김경숙 열사 추모제에 참가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일화를 이야기하자, 선배 활동가들도 그날을 기억한다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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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이 줄을 지어 분향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김경숙 열사를 그리워하고 추모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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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이 끝나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주최인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준비한 식사를 했습니다. 맛있는 김밥과 쑥인절미, 홍어무침 그리고 수박을 함께 먹으며 그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직접 캔 쑥으로 집에서 만든 쑥인절미, 온갖 채소와 양념으로 맛깔 나게 만든 홍어무침은 김경숙 열사의 동지이신 고영란 선배님이 한해도 빠지지 않고 직접 만들어 오시는 음식이라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선배님께 엄지척! 하며 너무 맛있다고 인사를 전하자 '후배들이 경숙이를 기억하고 매년 추모제를 지내주는 게 더 고맙지' 하시며 금세 눈물을 글썽이셨습니다.

47년 전부터 이어 온 김경숙 열사 추모제. 독재정권, 군사정권을 지나며 긴 세월 동안 계속해서 열사를 기리고 기억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경숙 열사의 정신이 곧 여성노동자회의 기원이기에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생각하기에 47주기 김경숙 열사 추모제까지 이어왔습니다. 수많은 선배 여성노동자들이 마땅히 주어졌어야 할 노동권을 찾고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맞서 싸운 역사를 기억하고, 여전히 만연한 성차별을 부수기 위해 계속해서 우리의 방식으로 투쟁하고 싸우겠습니다.


“죽음의 무게에 남녀차별 없어야” 민동주 기자
www.r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816 

YH노동조합과 김경숙 열사 소개영상
www.youtube.com/watch?v=7XP3QcGNXLM&t=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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