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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후기] 어디도 안전하지 않았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에 분노하며

2022-11-30
조회수 319



지난 9월 14일, 신당역에서 역무원으로 일하던 중 같은 직장에서 일하던 스토킹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고 사망한 여성노동자의 소식을 듣고 수많은 여성들이 분노와 애통함을 느꼈습니다. 이에 9월 22일, 여성노동연대회의에서는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과 분노한 여성들의 마음을 모아 집회를 열었습니다. 


700여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안전한 일터에서 무사히 퇴근하는’ 삶을 바라고 있음을 알려내고, 자신과 수많은 여성들을 위해 용기를 낸 피해자의 행보를 기억하며, 성차별적인 구조를 부수기 위해 목소리를 높혔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들과 수원,부천,안산,서울여성노동자회 활동가들도 집회에 함께하며 한국사회의 성차별적인 구조와 젠더폭력에 대한 무지와 반성없는 사측의 태도와 여가부장관에 문제제기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어진 활동가들의 발언들과 한국여성노동자회 레나활동가의 발언을 공유합니다.



자신의 일터에서 일하던 한 여성노동자가, 직장동료였던 스토킹 가해자에게 살해당한지 벌써 일주일이 흘렀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지난 일주일동안 한국사회가 젠더 폭력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그리고 성차별적 문화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을 앞에 두고도, 이것이 구조적 성차별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니며, 피해자가 자신을 더 잘 보호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여성가족부 장관, 본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는 경찰과 사법부, 사건 발생 후 ‘재발방지’를 한답시고 여성노동자들을 당직근무에서 배제하겠다는 서울교통공사 사장의 발언들. 이것들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여성에게 폭력적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명의 가해자가 충동적으로 벌인 참극이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참사입니다.


사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몸 담았던 서울교통공사는 과거 채용성차별로 이미 논란이 된 바가 있었습니다. 면접관과 면접위원장이 면접점수까지 조작해가며 자행한 조직적인 채용 성차별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교통공사는 “야간 근무 시 여성용 숙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뽑을 수 없다”며 여성지원자들을 탈락시켰습니다. 직장 내 성차별적 구조를 부끄러워하며 노동환경을 개선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근거로 채용 성차별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서울교통공사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가해자가 과거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입건되었을 때, 서울교통공사는 성폭력방지법에 의거해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울교통공사는 재발방지 의무를 외면하였습니다. 살해 사건 후, 교통공사 내 여성소모임에서 성명을 내고 사내게시판에 업로드하기 전까지, 교통공사는 아무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서울교통공사는 사내게시판에 올라온 성명문마저 무통보 삭제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과거 채용 성차별 과정에서 서울교통공사가 했던 발언과, 이번 사건을 대하는 서울교통공사의 태도는 무척 일관적입니다. 여성노동자가 일하기 위해 필요한 시설의 부재는 여성 지원자를 뽑지 않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직장 내에서 젠더 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인 여성들을 업무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듭니다.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고, 젠더 폭력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조직 내에 만연한 성차별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삭제하고 배제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조직. 이 안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스토킹 피해를 신고하고서도 2차 가해로 인해 괴로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게 단지 서울교통공사만의 문제일까요? 저는 이것이 서울교통공사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교통공사의 성차별적 태도, 젠더폭력에 대한 감수성 부재는 실은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너무나도 흔히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입니다.


여러분, 제가 속한 여성노동자회는 ‘평등의 전화’라는 여성노동상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일터에서 성차별, 성폭력을 겪고 괴로워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상담 전화가 매일같이 걸려옵니다. 사례들을 보면 하나하나가 정말 가관입니다. 여성노동자에게 ‘주말에만 생리하면 안되냐’고 말하는 고용주. 성희롱과 괴롭힘으로 직위해제된 가해자를 복직시켜놓고서 피해자에게 ‘어쩔 수 없다’며 참으라는 회사. 성희롱/성폭력을 신고한 후 당하는 업무배제와 2차가해. 이런 말도 안되는 사례들이 너무나 만연해서 하나하나 말하기 힘들 지경입니다.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이러한 일들을 정말로 숱하게 겪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되었던 직장 내 스토킹 피해 또한 결코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토킹’을 직장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폭력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용자나 경찰들, 사법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사실 직장 내 스토킹은 결코 희귀한 사건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피해자에게 무척 큰 고통을 주는 폭력이기도 합니다. 생계를 위해 일하는 일터에서, 밀접하게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동료로부터 당하는 스토킹은 피해자에게 무척 위협적입니다. 신고도 쉽지 않고, 신고 후의 2차 가해 위협으로부터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제대로 징계받지 못할 경우, 피해자는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피해자는 직장 내에서도, 법으로부터도, 한국 사회로부터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적절한 공간분리를 취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정보는 온라인에서 그대로 가해자에게 노출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야간 근무에서의 2인 1조 수칙은 서울교통공사 안에 존재하지조차 않았습니다. 지금도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여성노동자들을 업무에서 배제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망언을 지껄이는 중입니다.


피해자는 마지막 공판기일 전, “가해자가 절대 보복하지 못하도록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피해자는 가해자가 불법촬영을 위해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한 것을 발견한 후 최초 신고했습니다. 이후 자신에게 스토킹 피해가 이어지자 탄원서를 작성하고, 수사기관에 협조하며 끝까지 싸웠습니다. 자신, 그리고 함께 일하는 다른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피해자는 험난한 과정들을 이겨내며 끝까지 싸워왔던 것입니다. 피해자의 용감한 싸움에 응답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한국 사회였습니다.


과거 서울교통공사에서 이뤄졌던 채용성차별, 스토킹 대책 마련이 부실했던 회사, 신고 이후 이어졌던 2차 가해들, 가해자에게만 관대했던 법원의 조치, 참사 발생 이후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성차별적 발언들. 이 모든 것들은 모두 한 맥락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구조적 성차별이라고 부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일터에서의 성평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사법부는, 여성가족부와 고용노동부는 여성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끔 본 사건을 제대로 바라보고 해결하십시오.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십시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말 따위로 사건의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어디에서도 안전하지 못한 이 땅의 여성들이 모든 곳에서 안전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1] 이현경/서울교통공사노조

우리의 요구는 피해자가 말할 수 있는 신뢰와 안전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일터에 나온 여성노동자을 더 이상 성적으로 괴롭히고, 쫓아다니고, 소문을 퍼트려 조롱하지 못하게 막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직장내 성폭력 피해를 견뎌내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성평등하게 바꾸라는 것입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살아내지 않아도 안전한 일상, 오늘과 내일이 평화로운 일터를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여성노동자가 안전한 일터는 모든 노동자에게도 안전합니다. 여성노동자의 권리가, 여성의 권리가 보장될 때 모든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됩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여성의 힘으로, 여성의 연대로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만났습니다. 고인을 추모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끝까지 싸우기 위해 모였습니다. 여성이 안전한 일터, 여성이 행복한 세상을 우리들의 투쟁으로 반드시 만들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발언2] 박지수/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보복범죄’라는 가해자 관점의 표현은 스토킹의 심각성을 희석하고 피해자에게 범죄의 원인이 있는 것 처럼 보이게 합니다. 스토킹을 범죄 행위로 규정하는 스토킹처벌법 시행이 1년이 넘었지만, 피해자의 일상을 위협하는 스토킹을 아직도 ‘좋아하니까 따라다니는 것’ 정도로 취급하며 피해자를 탓하는 인식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9월 16일 한 서울시의원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남자 직원이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라고 했고 온라인에서도 피해자를 탓하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언론은 스토킹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인식을 경계하며, ‘보복범죄’가 아니라 ‘스토킹 범죄’로 표기하는 등 사건을 정의하는데에 신중해야합니다.


물론 ‘보복범죄’는 널리 쓰이는 말이며, 법률 용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법률용어와는 별개로 언론의 역할과 영향력을 고려하여 어떤 용어를 쓰고 쓰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대안 표현을 찾아야합니다.


또한 언론은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를 중단해야합니다. 사건 직후 조선일보 등의 언론들은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피해자와 가해자가 연인관계 였던 것처럼 자극적으로 보도해 유가족이 직접 항의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사들은 나중에 삭제되거나 수정되었지만 클릭수만을 위한 언론들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발언3] 황연주/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사무국장

지난 2월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은 바로 이 자리에서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의 정치를 멈추라고 외쳤습니다.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내내 혐오와 배제를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고, 성평등 정책은 실종되었으며,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로 여성 주권자의 존재를 지웠던 그 정치에 대항하여 외쳤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우리의 주장을 듣지 않았고, 자신들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갈라치기 전략을 고수했습니다. 정치가 듣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않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선거에서 표가 안된다고, 지지율에 도움이 안된다고 여겨졌습니다. 비단 이번 정부, 지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에서도 청년 남성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남성을 달래겠다며 페미니즘과 성평등을 지웠습니다. 권력형 성범죄에 반성하지 않고 정쟁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이 여성을 지우는 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규합하거나 눈치를 보았습니다. 여성 주권자는 무시해도 되는 숫자로 여겨진 동안 여성 폭력 피해자의 숫자와 차별의 사례들은 감쪽같이 지워졌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남성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계산되는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엄연한 시민이자 주권자입니다. 우리를 표 하나 득표율 숫자로 바라보며 지워도 된다는 존재로, 우리를 숫자로 바라보는 저 정권과 정치에서 어떻게 살아있는 인격권이 있는 존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겐 성차별·성폭력 철폐를 위한 싸움 최전선에 서 줄 정부가 필요합니다. 여성들과 소수자 편에 서서 남성 기득권 정치를 비판하고 설득하고 맞서 줄 여성가족부 장관이 필요합니다. 일부 혐오세력의 목소리가 아니라 평등과 존엄을 향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해줄 정치가 필요합니다. 비극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엄중 조사, 처벌 강화를 되풀이하는 정치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정부와 정치가 필요합니다.


[발언4] 도지현/한국여성의전화 활동가

피해자가 첫 번째 신고한 당시,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두 번째로 신고했을 때 경찰은 구속영장조차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찰은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는 이유로 신변보호조치를 중단하며 피해자에게 범죄 대응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는 스토킹처벌법 제정 후, 우리가 끊임없이 지적 하며 폐지해야한다고 외친 처벌법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제서야, 또 한 명의 여성이 죽고 나서야, 그토록 오랜 시간 지적하고 외친 한계인 ‘반의사불벌조항’을 뒤늦게 폐지하겠다고 합니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로 인한 여성 살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 분노의 게이지 통계에 따르면 1.4일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 내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놓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실이 여성가족부 장관에게는, 국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가 아닙니까? 여성폭력 방지와 피해자 지원에 앞장서야 하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현 법·제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한 피해자에게 ‘자신에 대해서 보호하는 조치를 강화했다면’이라고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을 내뱉는 현실이 정말 분노스럽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이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많은 여성을 잃어야 합니까? 우리는 더 이상 단 한 명의 여성도 잃을 수 없습니다.



현장발언이 이어진 후, 행진에 함께했습니다. 급하게 잡힌 일정이었음에도 많은 시민들이 끝까지 함께하며 여성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는 일터, 우리 모두에게 성평등하고 안전한 일터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외치며 다른 시민들에게도 이를 전달했습니다. 행진 후 이어진 시민들의 현장발언까지. 세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집회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성차별적인 한국사회에 더욱 더 분노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집회에서 이어지는 발언들을 들으며 이자리에 모인 모두가 참담하고 분하며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너무 더뎌 때론 좌절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걸 잊지 않고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끝까지, 함께 싸워나가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 성차별적인 사회를 끝장내는 날을 함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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